[유재성의 홍콩뷰] 성장보다 안정 … 홍콩 전기주가 잘나가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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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홍콩에 처음 오는 사람은 두 가지에 놀란다. 하나는 습도가 너무 높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밖은 더운데 건물 안은 춥다는 것이다. 에어컨을 너무 세게 틀어 건물 안에 있으면 긴 팔을 입어도 춥다고 느낀다. 사무실에서는 스웨터를 입고 다니는 사람도 흔히 볼 수 있다. 심지어는 겨울에도 에어컨을 튼다.

 에어컨을 많이 쓰다 보니 홍콩 사람은 전기요금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홍콩의 전력 공급은 두 개 회사가 지역별로 나눠 독점하고 있다. 이 중 한 군데인 CLP(中電)의 모카타 부회장은 지난달 초 열렸던 정기 주주총회에서 전기요금이 2015년까지 40% 가까이 오를 수 있다는 내용을 발표해 화제가 됐다.

 원칙적으로 홍콩 전력회사는 순투자액에 대해 9.9% 수익이 보장되기 때문에 적정 투자보수율을 유지하기 위해 전기요금 인상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과거에는 이런 원칙이 비교적 잘 지켜졌고, 지난 10년 동안 투자보수율도 10~14%로 수익성도 괜찮았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물가상승과 서민경제 악화에 대한 우려가 크다. 본토 중국자금의 유입으로 부동산 가격은 이미 천정부지로 오른 데다 택시와 지하철 요금도 줄줄이 인상될 예정이다. 정부가 CLP가 원하는 만큼의 전기요금 인상을 용인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요금 인상이 쉽지 않아진 만큼 이들 전력회사 이익 전망도 예전보다는 불투명해졌지만, 주가는 오히려 양호한 모습이다. 5월 이후 항셍지수에 비해 7~8% 초과 성과를 보이고 있다. 이는 경기방어주에 대한 관심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홍콩에서 전력회사는 성장성이 크지 않아 투자자들에게 전통적으로 인기 있는 업종은 아니다. 그러나 요즘은 대외환경이 불확실해지면서 성장보다는 안정성이 중요해지는 분위기다. 배당수익률도 올해 기준으로 5% 내외로 매력적이다. 게다가 최근 석탄가격이 하락 반전하고 있는 것도 긍정적이다.

 이렇게 방어주가 선방하는 것은 경기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진 것을 대변하고 있다. 가까이 지내는 홍콩의 한 외국증권사 임원은 이렇게 답답한 장은 처음이라고 표현한다. 2008년 경우에는 큰 폭락이 오고 그 이후에 큰 반등장세가 왔지만, 이번에는 대외 여건이 손쉽게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방향성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진 만큼 홍콩 현지의 주식시장 거래량도 크게 줄었다. 홍콩의 투자 심리는 주요국의 정책대응만을 기다리며 숨죽이고 있는 국면이다.

유재성 삼성자산운용 홍콩법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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