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에 빠진 공자의 후에들, 수능시험 봐도 통하겠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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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면

지난 8일 성균한글백일장 대회가 열린 중국 베이징(北京)시내 비전호텔 4층. 오전 9시 고사장 내 보드판을 가린 천이 걷히며 대회 주제(글제)가 공개됐다. 글제는 ‘말 한마디에 천냥 빚도 갚는다’. 학생들 사이에서 탄식이 터졌다. 일부는 손을 얼굴에 감싸며 고뇌했다. 하지만 얼마 뒤 고사장은 학생들의 답안 쓰는 소리만 들린 채 조용해졌다.

올해로 여섯 번째를 맞는 중국 성균한글백일장. 중국내 46개 대학에서 선발된 94명의 한국어학과 학생들이 자신들의 한국어 실력을 뽐냈다. 조선족을 제외한 중국인 한국어학과 학생만 참가했다. 학교 대표로 선발돼 백일장에 나선 학생들은 대회 참가 중 교통·숙박비가 모두 무료다. 3위 이내에 입상할 경우 성균관대에서 석사 과정 등록금 전액을 장학금으로 지원받는다.

이런 파격적 조건 때문에 대회 열기는 항상 뜨겁다. 올해도 참가 인원이 지난해 보다 15명이나 늘었다. 학교 대표는 아니지만 사비(私費)를 내면서까지 응시한 학생도 10명이나 된다. 박정하 성대 학부대학 교수는 “학생들의 수준이 높아 변별력을 높이려 속담을 글제로 썼다”며 “그런데도 대부분 500자 원고지 5~6장씩을 써 놀랐다”고 말했다.

1위는 산둥(山東)성 제난대 3학년 리신위에(李欣悅ㆍ21)씨가 차지했다. 백일장을 위해 상경하던 중 어머니에게 화를 낸 죄송한 마음을 글로 옮겼다. 그는 “글제를 본 순간 어머니 얼굴이 떠올라 눈물이 났다”며 “한국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해 기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차동옥 국제처장은 “한중 수교 20주년을 맞은 시점에서 양국간에는 문화 차이로 생겨난 갈등도 많다”며 “백일장에 나선 학생들이 이런 갈등을 해결할 지한파(知韓派)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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