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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공짜 점심이 어딨나 통신망 거덜날 수밖에 없다”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카카오 ‘보이스톡’의 파장이 예상보다 훨씬 크다. 지난 4일부터 시범 서비스에 들어간 이 공짜 모바일 인터넷 전화 서비스에 소비자는 환호하고 있지만 통신업계는 심각한 표정이다. SK텔레콤·KT 양대 이동통신사는 사운을 걸고 대응하는 분위기다. 보이스톡 사용에 대한 일부 제한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팽팽하게 대립하는 두 진영의 수장을 8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표현명(54) KT 개인고객부문 사장과 이석우(46) 카카오 공동대표다. 두 사람은 상대방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을 삼갔지만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다는 비장한 각오가 어조에서 묻어났다.

표현명 KT 개인고객부문 사장

-이동통신 업계가 카카오의 ‘보이스톡’ 서비스를 놓고 통신산업 위기론을 편다.
“큰 그림으로 보자. 정보통신기술(ICT) 백년대계를 짠다고 생각해보라. 앞으로 ICT 시대는 네트워크, 특히 무선망 인프라가 중요하다. 요즘 대부분의 인터넷 서비스는 스마트폰 같은 개인 스마트 기기가 아니라 클라우드(가상서버)를 통해 작동된다. 언제 어디서나 개인 스마트 기기와 클라우드를 연결시켜주는 게 무선망이다. 이런 강력한 무선망을 깔아온 통신회사들이 인프라 투자에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100원을 들여 무선망을 구축했는데, 수익은 50원도 안 된다. 누가 통신망 투자를 하겠나. 아무리 국가 기간산업이라 해도 민간회사가 계속 손해 보면서 인프라 확충에 나설 수는 없지 않나. 국가 통신망 인프라가 거덜나는 길밖에 없다. ‘공짜 점심’은 없다. 눈앞의 이익이 될지 몰라도 멀리 보면 큰 화다.”

-미국에서는 이동통신사들이 보이스톡 같은 서비스를 허용하는데.
“좀 더 들여다보면 우리와 비슷한 처지다. 미 이통사들은 공짜 서비스를 인정하지만 이를 쓰려면 이용자가 요금을 더 내도록 한다. 모바일 콘텐트가 대세라 막지는 못하지만 그 비용을 소비자에게 추가 부담시키는 것이다. 미국에서 휴대전화나 무선인터넷을 해봤나. 주요 도심 외에서는 잘 터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투자 대비 수익이 나지 않아서다. 미국에서는 수익이 잘 나지 않으면 요금을 적정 수준으로 올리거나 관련 투자를 뒤로 미룬다. 자유시장경제 원리에 따르는 것이다. 미 소비자도 그런 이통사를 이해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전국 곳곳에서 휴대전화와 무선인터넷이 잘 터진다. 소비자 기대치가 크고 통신사는 이에 잘 부응해 왔다. 그래서 손해를 감수하면서 엄청난 네트워크 투자를 해 온 것이다.”

-스마트폰 시대를 맞아 카톡이나 보이스톡 서비스를 예상하지 않았나.
“새로운 혁신 서비스를 막을 생각은 없다. 다만 유선 인터넷 전화처럼 새로운 서비스에 맞는 환경이나 제도를 우선 마련해야 한다. 유선 인터넷 전화는 통신망 투자에 대한 대가와 이에 대한 사업자 간 정산체계를 갖추는 등 관련 제도를 마련한 뒤 도입했다. 무료 모바일 인터넷 전화(mVoIP)는 별다른 대책 없이 서비스가 시작됐다. 이통사들은 여러 규제를 받으면서 음성통화를 서비스한다. mVoIP 사업자는 무임승차해 아무런 제약 없이 장사를 하는데…. 정부가 관련 제도를 마련할 때까지 신중하게 접근하자는 뜻이다. 점진적으로 연착륙하면 좋겠다.”

-보이스톡 같은 공짜 서비스가 통신망에 얼마나 과부하를 일으키나.
“스마트폰은 강력한 무선 네트워크가 뒷받침돼야 한다. 하지만 무선망은 화석연료처럼 유한한 자원이다. 무선망 트래픽이 최근 3년간 153배나 늘었다. 폭발적인 증가세다. 네트워크에 대한 지속적이고 충분한 투자가 없으면 언제 ‘블랙아웃’이 될지 모른다. 요즘 인터넷망이 멈추면 전체 산업이 셧다운된다. 보이스톡을 비롯해 공짜 콘텐트 서비스들이 이런 문제를 촉발시킬 수 있다.”

-기존에도 무료 모바일 인터넷 전화는 있었다. 왜 보이스톡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나.
“보이스톡은 국내외 4500만 명 가입자를 보유한 카카오의 서비스다. 특히 무료 문자메시지인 카톡은 많은 가입자의 손에 익어서 보이스톡 이용에도 부담이 없다. 또 음성통화가 무료라는 인식이 확산되면 이통사들의 생존은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이통사들이 예전처럼 가만히 앉아서 돈 버는 게 아니다. 혁신 서비스도 열심히 개발하고 새로운 망 투자에도 힘쓴다. 공짜 음성통화는 이통사의 기본 수익 기반을 무너뜨리고 통신망 인프라 투자의 차질을 초래한다.”

-카카오는 보이스톡의 통화 품질이 떨어져 보완재 역할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모바일 인터넷 전화와 이동전화는 본질적으로 같은 음성통화 서비스다. 스마트폰을 이용하고 전체 가입자가 동일한 회원이 될 수 있어 그 파괴력은 간단치 않다. 보이스톡은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은 뒤 문자 형태로 전화 송·수신을 알려주는 등 불편함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통화 품질도 차이가 난다. 그래도 음성통화 기능은 기존 이동통신 서비스와 같다. 보완재 역할의 음성통화 기능을 내놓으려면 차라리 이통사와 공동으로 좋은 품질의 서비스를 하는 게 맞다. 4500만 가입자를 상대로 부실한 서비스를 시작하는 것이 말이 되나.”

-이통사들이 보이스톡을 계기로 요금을 올리는 것은 꼼수라는 지적이 있다.
“이통사가 언제 요금을 올렸나. 지금도 어떻게 하면 소비자 요금 부담을 줄일 수 있을까 고민한다. 지금도 보이스톡 같은 무료 모바일 인터넷 전화를 전면적으로 제한하지 않는다. 5만4000원 요금제에서는 누구나 쓸 수 있다. 사실 투자 대비 수익을 고려하면 전면 차단해야 맞다. 하지만 소비자가 자율적으로 판단해 달라는 것이다. 정부 정책이 나올 때까지 이용자 편익 차원에서 일부 ‘무제한 요금제’ 가입자에게 허용하는 것이다.”

-LG유플러스가 ‘보이스톡을 전면 허용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상철 부회장은 정보통신부 장관까지 한 분이다. 무선통신망과 그 투자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실 분이다. 그 회사 입장에서 이해는 간다. 3위 이통사로서 어떻게든 통신판을 뒤집을 필요를 느꼈을 것이다. 당장은 소비자의 박수를 받을지 모르지만 국가 통신산업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잘못된 결정이다. 안타깝다.”

이원호 기자 llhl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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