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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베토벤·슈베르트 … 으뜸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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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호 27면

오늘날 남아 있는 대부분의 슈베르트 초상화는 비교적 준수하게 생긴 청년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것은 화가들이 알아서 잘 그려 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키가 작고 배가 나오고 못생긴 사내였다. 이 그림의 슈베르트는 실제 모습에 많이 근접해 있다. [Ölbild von Carlo Bacchi]

중앙SUNDAY에 ‘에디톨로지’를 연재 중인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에게는 불치의 취미생활이 하나 있다. 혹시 그 글발의 덫에 걸려 이것저것 찾아 읽은 사람이라면 제법 목격했을 것이다. 노는 만큼 성공한다는 둥, 아내와의 결혼을 가끔씩 후회한다는 둥, 이녁과 저녁 사이의 상관없는 얼레리꼴레리들이 생뚱맞게 편집되어 새로운 창조물이 생겨난다는 둥 구라의 실타래를 풀어나가는 도입부에 양념처럼 자주 언급되는 한 사람이 있다. 그 ‘한 사람’을 핀셋으로 콕 집어 이리 놀리고 저리 골려먹는 것이 바로 김정운의 유구한 취미생활이다.

詩人의 음악 읽기 음악사 3대 추남

시집도 안 내면서 시인 행색 한다고, 컴컴한 지하실에 틀어박혀 홀로 사치스럽게 존재의 불쌍함의 포즈를 영위한다고, 잘난 마누라를 뒷배경으로 제 꼴리는 대로 사는 자유를 구가하는 거라고, 남들도 다 있는 아들 자랑한다고, 무엇보다 자기와 비교해서 얼굴이 짜장 못생겼다고 뭇 여인들이 증언한다며 괴롭히고 들볶고 놀려먹는 그 죄 없는 한 사람은 바로 나다. 그나마 글을 써서 놀릴 때는 남의 넓적다리 긁나보다 하는 심리적 소격(?)이라도 가능하지만 문제는 여럿이 함께 모여 놀 때다. 좌중에 새초롬하니 신경 쓰이는 암사슴이라도 있을라치면 그의 증세는 심각해진다. 아예 내 안면의 면을 두고 면벽수도할 각오로 그 외모의 비교우위론을 견뎌야 한다. 무슨 얼굴이 저렇게 사각이냐. 저리 튀어나온 배를 안고 어찌 문화를 논하냐. 뭘 못 먹어서 키는 저렇게 짱똥하냐. 김정운이 처음 우리 집에 와서 내 아들을 만났을 때였다. 통상 아비의 친구라면 그 집 아들에게 해주는 예의의 헌사들이 있다. 한데 그 첫대면에서 김정운이 했던 말은 “네가 똘똘하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얼굴은 나보다 훨씬 못하구나!”였다. 당시 중학생이던 아들은 이 괴이한 아저씨의 얼굴 자랑에 어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멍청한 표정으로 눈만 데록데록 굴리고 있었다. 나중에 아이가 그랬다. “저 아저씨 왜 저래?”

김정운의 취미생활에 대처하는 방법은 인류애다. 나 하나 묵사발돼서 한 인간이 행복하다면 그것도 인류평화에 기여하는 길이다. 일찍이 제정 러시아의 고독한 혁명가가 외치지 않았던가. ‘이 세상 어딘가에 삶의 고통으로 흐느껴 우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내 탓이다.’ 그렇다. 이 세상 어딘가에 오십 줄 넘어선 아저씨가 얼굴 생긴 걸로 좌고우면 전전반측하고 있다면 그것은 내 탓인 것이다.

생김새가 창작의 원천이었던 예술가도 꽤 있을 터이다. 한때 일본 사람들이 주로 써대는 음악의 뒷얘기 투의 책을 즐겨 읽었는데 거기 적힌 음악사 3대 추남이 떠오른다. 3대 추남은 뜻밖에도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이름으로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라는 것이다. 위인전이나 중학교 음악수업 시간에 본 세 사람의 초상화는 그리 못생기지 않았는데 사실인즉 그 초상들이 요즘 말로 하면 죄다 당대 화가들의 “뽀샵질”이라고.

모차르트는 못생겼다기보다 아주 이상하고 기괴한 외모였다고 한다. 무척이나 왜소하고 볼품없이 마른 몸매에 비해 턱없이 크고 불균형한 두상을 가졌는데 그 예민하고 변덕스럽고 철없이 까불고 종종 대책 없이 거만해지는 성격이 생김새에서 나왔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 ‘엘비라 마디간’의 평온함과 귀족 놀려먹기의 극치를 달리는 오페라들의 변덕스러운 악구들을 대조해 생각하면 능히 유추가 된다.

베토벤의 험상궂은 얼굴에 대해서는 증언이 넘쳐난다. 심지어 쳐다보기가 끔찍했다는 기록도 있다. 하지만 정작 베토벤의 대인 기피증을 유발한 것은 얼굴이 아니라 본인도 자각하고 있던 겨드랑이 냄새였다. 이른바 ‘암내’라고 부르는 그 지독한 향훈을 견딜 수 없어 멀리멀리 달아나는 여인들의 뒷모습을 씁쓸히 쳐다보며 32곡의 피아노 소나타들이 씌어졌으리라.

하지만 생김새로 인한 청춘 쪽박론의 종결자는 역시 슈베르트다. 신장 152센티미터. 임신부처럼 튀어나온 똥배, 피에로처럼 생긴 얼굴. 게다가 취직 한번 못해본 평생 빈대. 아, 무엇보다 다변 다식의 까불이였다. 유별나게 많이 먹고 많이 떠드는 것도 우울증의 한 증세라는데 틀림없다. 사후에 밝혀진 슈베르트의 일기장에는 자학의, 전혀 명랑하지 않은 언사들이 넘쳐난다. 슈베르티아데라고 부르던 동호회가 있을 정도로 친구들과 가까웠던 슈베르트였지만 못 생겨서 죄송하고 그래서 연애 한번 못 해본 인생은 남몰래 속앓이를 하며 사창가를 찾았던 것이다. 매독 걸린 슈베르트는 ‘겨울 나그네’를 완성하고 1년 후에 죽었다.

내 나이 스물 셋의 어느 가을날 바람이 몰아치는 비탈길에 서서 얼굴 생김새 따위에 대한 관심은 멀리 떠나보냈다. 오십 줄 들어서도록 ‘계란같이 동그란 내 얼굴’을 밤낮 자랑하는 이 유명 문화심리학자의 애잔한 심리를 누가 돌봐야 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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