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넷키즈] 탈선 치닫는 채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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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체류 중인 미국 기업인 A씨는 얼마전 황당한 경험을 했다.

한글 연습도 할 겸 한국 청소년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인터넷 화상 채팅 사이트에 들어가서다.

A씨가 자신을 소개하는 캐릭터로 장난삼아 예쁜 여자 그림을 선택하자 1대1 대화를 요청하는 남학생들의 메시지가 계속 날아들었다.

급기야 한 학생은 화상을 통해 자신의 알몸을 ''생중계'' 하기 시작했다.

A씨는 "한국에서 채팅을 통해 유익한 대화를 나눈다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 했다.

모르는 사람끼리 컴퓨터를 통해 대화를 나누는 채팅. 그러나 원조교제에서 성폭행.폭력.갈취 등 흉악한 범죄로까지 이어지는 타락의 함정으로 변질된지 오래다.

◇ 난무하는 음란 대화=7일 자정 한 인터넷 사이트 화상 채팅방. ''내 ○○ 볼 캠녀만'' ''화끈하게 벗어보자'' ''쇼걸 환영'' 등 음란한 문구를 앞세운 채팅방들이 즐비했다.

15세의 남학생은 ''○○ 보여주실 분 없나요'' 라며 계속 메시지를 보냈다. 다른 인터넷 사이트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1990년대 초 처음 등장할 때만 해도 건전한 토론.대화가 주를 이루던 채팅방들이 변질되기 시작한 건 2년쯤 전. 경찰청 사이버수사대 관계자는 "원조교제라는 성범죄가 고개를 들면서부터" 라고 말한다.

거기에 인터넷과 화상 카메라 보급이 확대되고, PC방이 늘면서 급속히 타락해갔다는 설명이다.

그는 "순진한 소녀들이 채팅을 통해 성범죄의 늪에 빠져드는 건 한순간" 이라고 지적했다.

◇ 원조교제의 함정=지난달 상습 원조교제를 하다 경찰에 붙잡힌 중3년생 H양이 처음 채팅을 접한 건 지난해 12월 초. PC방에서 채팅을 하던 H양은 대학생 朱모(22) 씨를 만나게 됐고 성관계까지 갖게 됐다.

평범한 중학생인 H양은 "원조교제가 가장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 이라는 朱씨의 말에 가출, PC방을 전전하는 생활을 시작했다. H양은 이후 10여명의 남자와 원조교제를 해왔다.

W대 3년 吳모(21) 씨는 친구와 함께 20대 회사원을 폭행하고 금품을 뺏은 혐의(특수강도) 로 8일 경찰에 붙잡혔다.

여자친구(18.고2) 가 채팅을 통해 알게 된 회사원 金모(22) 씨를 며칠 전 만난 吳씨는 "내 친구(여) 가 당신에게 성폭행당해 상처를 입었다" 고 주장하며 때리고 현금 등 6백30여만원을 빼앗았다.

K양은 지난 2일 새벽 몇마디 채팅을 주고받은 金씨와 그날 바로 만났었다.

7일에는 여중 3년생과 원조교제를 한 취업정보회사 대표인 文모(34) 씨 등 7명이 무더기로 경찰에 체포됐다.

서울경찰청이 지난해 적발한 10대 소녀 원조교제는 모두 2백82건. 이중 절반이 넘는 1백51건이 채팅에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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