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반 컬렉션] 차이코프스키 '사계'

중앙일보

입력

낭만주의 시대는 1천명의 연주자를 동원해 1시간 가까이 연주하는 대작(大作)과 3~4분짜리 소품이 공존하던 시기였다.

특히 피아노 독주를 위한 성격소품(character piece)은 꿈이나 전원.밤 등 특정 이미지나 문학작품이나 어린 시절의 추억, 향토색 짙은 풍물 등 음악 외적인 내용을 짧은 악상에 담은 것. '뱃노래' '행진곡' 등의 표제를 달고 있다.

멘델스존의 '무언가' , 슈만의 '어린이의 정경' 등이 대표적인 예다.

차이코프스키도 24곡의 소품을 엮은 '어린이를 위한 앨범' 과 함께 12곡짜리 '사계(The Seasons)' 를 발표했다.

'사계' 는 1875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발행되는 음악잡지『누벨리스트』의 권말부록 악보로 게재된 피아노 소품이다.

차이코프스키는 매월 마감에 쫓기면서 이 '피아노 월령가(月令歌)' 를 썼다.

'화롯가에서' '카니발' '종달새의 노래' '백야' '추수' '사냥' '가을의 노래' '크리스마스의 계절' 등 가볍지만 다채로운 분위기의 매력적인 소품들이다.

가장 유명한 곡은 6월 '뱃노래' 와 11월 '트로이카' . 대형 화폭에 굵은 터치로 그린 풍경화가 아니라 연필로 그려낸 스케치라고나 할까. 화려하지만 과장 섞인 관현악곡에서 볼 수 있었던 차이코프스키의 모습과는 딴판이다.

피아니스트 미하일 플레트노프가 1994년 버진 클래식 레이블로 선보인 이 음반은 소품으로 압축된 악상 뒤편에 숨겨진 음악적 깊이와 낭만주의 정신까지 발굴해 관현악을 방불케하는 다채로운 음색으로 펼쳐 놓는다.

플레트노프는 발레음악 '잠자는 숲속의 미녀' 를 피아노 편곡으로 녹음할 정도로 차이코프스키 음악의 핵심에 접근해 있는 연주자다. 비발디의 '사계' 처럼 계절이 느껴진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