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치안은 공짜가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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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창무
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제18대 대선이 불과 몇 달 앞으로 다가왔다. 각종 시사프로그램에서는 대선 이슈가 범람하고 있다. 그런데 넘치는 대선 이슈에서 ‘치안’ 관련 내용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하기야 지난 4월 총선에서도 치안 공약은 눈에 띄지 않았다.

 수원 20대 여성 납치 살인 사건과 학교폭력 등 치안 불안 요소는 우리 사회 곳곳에 쌓여 있지만 어떻게 국민을 범죄 불안으로부터 해방시켜 주겠다는 정치권의 약속은 들리지 않는다. 그저 호통만 칠 뿐이다. 야단치고 비판만 하라고 국회의원 뽑아준 것은 정녕 아니건만 실효성 있는 대책을 제시하는 정당과 정치인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사실 그럴 전문성이 있는 정치인도 없는 게 현실이다. 무상복지 등 사탕발림 공약은 경쟁이라도 하듯이 내놓으면서 국민의 안전은 강 건너 불 격이다.

 지난 1일 제주에서 열린 대선 치안공약 관련 세미나에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국회의원들이 초청된 바 있다. 각 당의 치안공약 관련 주제발표 요청 때문이었다. 그나마 민주통합당에서는 참석 의사를 밝혔으나 새누리당은 “검경 갈등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경찰 행사에 참석할 수 없다”는 이유로 참석을 거부했다. 자연스레 민주통합당도 참석 의사를 거둬들였다. 도대체 국민의 범죄 불안을 해소하는 치안 정책 마련에 검경 갈등문제가 왜 끼여 드는지 모르겠다.

 큰 범죄나 사고가 발생하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여야는 한목소리로 경찰을 질타한다. 어떻게 해야 국민의 범죄 두려움을 줄이고 치안 불안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아무런 관심과 의지도 보이지 않으면서 말이다. 치안에 대한 정치권의 무관심과 홀대에 대해 일부 경찰은 냉소적인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우리나라 치안이 다른 나라에 비해 너무 양호하기 때문 아니겠어요.” 그렇다고 국민이 범죄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살아가는 것도 아니다. 학교폭력을 비롯해 부녀자 납치 등 치안문제는 산적해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정치인들이 치안에 대해 잘 모르니까 관심도 없고 정책이나 공약으로 내세우지도 않는 것일 뿐이다. 국회의원뿐 아니라 보좌관, 그리고 당의 전문위원 중에도 마땅히 치안전문가라 할 만한 사람이 없는 게 현실이다.

 철저한 무시와 푸대접을 받고도 정치인들에게 몸을 바짝 낮추기만 하는 경찰의 모습도 안타깝고 한심스럽다. 괜히 여야 국회의원들에게 미운털이 박혔다가 경찰 예산은 물론이고 상임위나 국정감사에서 혼이 날까봐 몸조심하는 것일까. 아니면 가뜩이나 첨예한 수사권 문제 등에서 불이익을 당할까 목소리를 낮추는 것일까. 치안의 중요성과 경찰의 역할 홍보에 대한 전략적 사고는 물론이고 적극적으로 해보겠다는 의지도 엿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안은 중요하고 국가 존립의 기본이다.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호남이 없으면 나라 역시 없다(若無湖南 是無國家)”고 했지만 사실 “치안이 없으면 국가는 존재할 수 없다(若無治安 是無國家).” 우리가 개인의 자유를 일부 희생하고 세금을 내는 이유가 치안을 담보로 하기 때문 아니겠는가.

 진정 미국·캐나다·스웨덴 경찰들이 과거 그랬듯이 우리나라 경찰도 파업이라도 해야 치안의 중요성을 알 수 있을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이번 수원 20대 여성 납치 살인사건에서도 되풀이됐듯이 정치권은 항상 사람이 죽고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아야만 치안에 관심을 가져주는 척하고 못내 관련 법안도 처리하곤 한다. 제19대 국회의 막이 올랐다. 하지만 19대 국회에서도 치안은 먼 곳에 있을 것만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든다. 치안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이창무 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