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네마 추천 금주의 개봉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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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기계화된 문명속에 살고 있는 인간의 정체성, 거기에서 비롯된 암울한 세계관은 오시이 마모루가 일관되게 그려온 주제다. 그런 그가 '공각기동대' 이후 5년만에 내놓은 신작, '아발론'이 이번 주말 국내에 소개된다.

'아발론'은 폴란드에서 올 로케이션으로 촬영해 디지털로 재가공한 실사영화.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결합으로 각각의 장르가 가지는 한계를 뛰어넘는 그만의 독특한 작품세계가 집적된 작품이기도 하다.

역시 영화는 쉽지 않다. '아발론'은 가상현실의 사이버전투게임의 명칭으로 상처입은 아더왕을 여신들이 서쪽 바다의 극락의 섬 '아발론'으로 인도했다는 전설에서 따왔다.

배경은 정확히 알 수 없는 미래. 주인공인 애쉬는 여자 프로게이머로 현재는 팀플레이를 펼치는 '파티'에 소속되지 않고 홀로 게임을 하며 레벨을 높여가고 있다. 그러던 중, 예전 연인이자 동료였던 머피가 '아발론' 게임의 최종단계인 클래스 SA에 도전했다가 미귀환자가 되어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애쉬 역시 위험을 무릅쓰고 게임의 마지막 단계 클래스 SA에 도전한다.

결국, 주인공이 이르게 되는 게임의 마지막 단계는 현실과의 구분이 모호한 세계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상상인지 구별이 불가능한 세계. 주제가 뭔지를 묻는 질문에 "직접 느껴보라"는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답변처럼 이처럼 독특한 형식의 영화는 직접 보고 느껴봐야 할 듯. 일반관객들에게는 어느정도의 인내심을 요구할 수도 있겠다.

이번주에 개봉되는 또 한편의 흥미로운 영화가 있다. 장희선 감독의 '고추말리기'. 여성 삼대가 지나온 역사와 가족의 일상을 소소한 사건들과 그들의 인터뷰를 통해 그린 다큐멘터리성 영화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사실은 주인공 노처녀를 제외하고는 감독의 어머니와 할머니 등 실제 인물들을 배우로 출연시켜 직접 그들의 일상을 재현시킨 점이다.

뚱뚱한 딸에게 빨리 쌀 빼서 시집가라고 구박하는 어머니, "어떻게 저런 여자가 내 엄마일 수 있냐"며 씩씩거리는 딸, "네 엄마가 데면데면하게 구는 것은 다 내 죄"라고 한탄하는 칠순의 할머니 등 남모르는 가족 구성원들의 속내와 미묘한 감정들이 과장없이 그려져 공감을 자아낸다.

영화를 보고 있는 중에 아니면 영화가 끝난 후 오늘 아침 한바탕 말다툼을 했던 엄마와 할머니가 떠오를지도 모를 일.'고추말리기' 는 우수 독립영화를 개봉작으로 발굴해 온 인츠닷컴의 세번째 작품으로,99년 여성영화제 관객이 뽑은 영화로 선정됐고, 야마가타 영화제와 베를린 영화제에 공식 초청된 바 있다.

개봉영화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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