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건축가의 힘] 한옥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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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들은 어떤 집에 살까. 얼마나 근사한 집에서 얼마나 특별하게 살까. 흔히 집 짓는 게 직업인 만큼 건축가의 집은 엄청나게 화려하고 고상할 것이라 기대하기 쉽다. 하지만 건축가들이라고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쇼룸에 살지는 않는다.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고, 조금은 앞서가는 모험적인 시도가 담길 순 있지만 돈을 쏟아부었거나 치장을 많이 한 집들은 아니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도 있고 한옥에 사는 사람도 있다. 크게 보면 일반인의 집과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그들의 집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그게 무얼까.

건축가 김진애(서울포럼 대표) 박사는 "집의 궁극적 건축가는 집 주인"이라고 말한다. "사는 사람만큼 자기가 원하는 집을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말이다. "건축가의 집은 건축주와 건축가가 겹친다는 것이 행운일 뿐"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런 행운을 엿보려 '특별하지 않게 특별한' 건축가들의 집 현관문을 week&이 두들겨 봤다.

여섯 살 막내딸이 유치원에서 그린 '우리 집' 그림엔 온통 네모뿐이었다. 커다란 네모 안에 작은 네모들이 늘어선 삭막한 풍경-아파트다. 그 몰개성적인 네모들 중에서 제 집을 표시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던지, 딸 아이는 화살표를 쭉 뽑아 놓았다. 그 끝엔 서툰 글씨로 적힌 '○동 ×××호'. 유년기를 보낸 집을 숫자로나 기억하게 될 아이가 측은했다. 자신의 직업이 더없이 부끄럽기도 했다. 남자는 서둘러 제대로 된 집을 찾기 시작했다. 결론은 한옥이었다.

우리 시대 대표 건축가 중 한 명인 김영섭(55)씨가 한옥에 살게 된 사연이다. 삐뚤삐뚤한 그림 한 장 때문에 '잘나가는' 동네, 서울 방배동의 아파트를 버린 김씨 가족은 16년째 종로구 계동의 한옥에서 살고 있다. 차 한 대 지나가기도 벅찬 골목길을 돌아돌아 들어가야 하는 집. 그래도 김씨 내외와 세 아이는 '집다운 집'에서 살 수 있어 늘 행복하단다.

'능소헌'과 '청송재'. 김씨네 집은 이렇게 두 채다. 원래는 능소헌 한 채뿐이었다. 능소헌을 '만난' 것도 우연. 집을 보러 간 길에 52년 동안 능소헌에 살았다는 할아버지를 뵙고 김씨는 넙죽 절부터 올렸단다. "좋은 집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면서. 그 절 한번이 능소헌을 잡았다. 돈이 부족해 포기하려던 참에 할아버지께서 전화를 주셨더란다. "자네가 마음에 드네. 집이 좋거들랑 그냥 그 돈만 내고 들어오시게."

청송재는 능소헌에 산 지 7년 만에 구했다. 임자가 나서지 않아 부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접하곤 아까운 마음에 무리를 했다. 마침 세 아이가 커가면서 공간도 더 필요할 즈음이었다. 담을 허물고 한 집을 만들자 정취가 더욱 살아났다.

김씨의 맏아들은 미국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고, 둘째인 딸은 명문대를 나와 사법고시를 준비 중이다. 막내딸은 일본어 통역사 꿈을 키우고 있다. 포부도 번듯하지만,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고 성실하게 사는 자세가 더 훌륭한 젊은이들. 이렇게 아이들이 잘 자라준 걸 김씨는 '한옥에 산 덕'이라고 말한다. 자식 자랑까지 결국 집 자랑으로 기대서밖엔 할 줄 모르니, 천생 건축가요, 죽었다 깨어나도 한옥 애호가다.

"한옥에 살면 무언가 들여놓을수록 추해지는 마당과 마루를 보면서 '비움'의 아름다움을 배우게 됩니다. 크게 부지런을 떨지 않아도 깨끗하고 고즈넉한 공간을 즐길 줄 알게 되면 '느림'의 미학도 깨우치게 되고요. 이런 것들은 삶을 한 발 뒤에서 관조하게 해주죠. 이런 여유가 지금의 생각 깊은 아이들을 길러낸 것 같아요. 결국 집이 사람을 가르친 거죠. 이게 바로 한옥의 위대한 점입니다."

글=남궁욱 기자<periodista@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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