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그룹 CEO에 듣는다] ④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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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진그룹은 지난해 말 액정 프로젝터에 쓰는 초소형 액정표시화면(LCD)을 만드는 신규사업에 나섰다. 매출액이 1조원 규모인 사세로 보면 적지 않은 1천7백억원을 투자한 것이다.

정보통신.생명공학.벤처투자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허진규 회장을 만나 '공격적 경영' 의 의중을 들었다.

- 신규투자를 늘리는 배경은.

"투자는 남들이 안 한다고 줄이거나 남들이 한다고 따라 하는 것이 아니다. 일진이 갖고 있는 소재산업을 보다 고도화하기 위해 LCD사업에 나선 것이다. 투자액은 투자자산의 일부를 정리해 충당할 것이기 때문에 무리가 없다."

(일진은 SBS지분 5.5%와 신세기통신.온세통신.LG텔레콤.두루넷.하나로통신의 지분을 .75~11.93% 보유하고 있다.)

- 연초 사업장을 돌며 구조조정을 강조했는데.

"적자 사업장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하라고 주문했다. 토요타 자동차는 2백여 종의 차량을 만들면서 4백만 가지의 부품을 쓰고 있는데 부품이나 차량의 재고가 하루치를 넘지 않는다. 경영관리를 좀더 세밀히 하라고 했다. 사업장별로 구조조정을 추진해 몇몇 사업은 그만 둘 각오다."

- 해외연구법인을 통한 신물질 개발은.

"미국 보스턴에 있는 신물질 연구법인이 현지 연구기관과 공동개발하고 있다. 올해 특정 분야의 치료제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신물질은 연구단계가 복잡하고 성공 가능성도 희박하다. 그러나 생명공학은 유망사업이어서 연구개발투자를 꾸준히 하겠다."

- 해외사업이 부진한 편인데.

"해외투자를 올해부터 해볼 생각이다. 동남아국가들과 합작공장을 짓고 해외시장 개척에도 신경을 쓸 생각이다."

- 그룹 중심의 경영이 점차 퇴색하고 있다.

"계열사간 상호지급보증 관계는 거의 정리단계에 와 있고 상호 투자지분도 단계적으로 정리할 것이다. 일진다이아몬드.일진경금속.일진소재 등 재무구조가 좋은 계열사는 공개할 계획이다."

- 장남이 그룹에서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데 2세에 경영권을 물려줄 것인가.

"나는 능력이 없는 2세에겐 절대로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는다. 주주권과 경영권은 다르다. 하지만 그룹이나 시장에서 경영능력을 인정받으면 누구도 (2세 승계에 대해) 시비를 걸지 않을 것이다."

- 계열사 사장단 운용은 어떻게 하나.

"잘하는 회사는 간섭하지 않는다. 못하는 회사의 경영진에 훈수를 많이 하는 편이다. 주변에선 못하는 회사에 회장이 팔을 걷고 나서는 것보다 잘하는 회사에 좀더 힘을 보태면 그룹경영에 더 이익이 아니냐는 충고를 한다."

◇ 허진규(62)회장은〓서울대 금속공학과를 나와 1967년 일진금속공업이란 영세 주물업체를 창업했다.

94년 GE와 공업용 다이아몬드 특허분쟁을 겪으며 그룹경영에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분쟁을 마무리한 후 일진다이아몬드를 세계 3대 공업용다이아몬드 업체로 키웠다.

매출액의 15% 이상을 연구개발비에 들이며 90년 서울대학교에 신소재공동연구소를 세워 기술개발 산학협동에 공을 들이고 있다.

최근 이천전기.전주방송 등을 잇따라 인수해 소재.정보통신.생명공학을 3대 주력사업으로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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