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 컬렉션] '4개의 마지막 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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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로 생전에 최고의 지위와 영예를 누렸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1864~1949) 는 정치인들에게 유럽문화의 부흥을 노력해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쓰면서 바쁜 말년을 보냈다.

아들 프란츠는 이런 아버지의 모습이 무척 실망스러웠다.
그래서 메아리 없는 편지는 그만 쓰고 다시 작곡에 전념하라고 권했다.

'4개의 마지막 노래' 는 이렇게 해서 작곡됐다.
1948년 스위스에서 헤르만 헤세와 아이헨도르프의 시에 관현악 반주에 노래를 붙인 '봄' '9월' '잠잘 때' '저녁 노을에' 등 4편의 주옥같은 가곡을 완성했다.

슈트라우스는 초연을 지켜 보지 못한채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이곡은 1950년 런던 로열알버트홀에서 푸르트벵글러 지휘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초연됐다.

출판업자 에른스트 로트가 제목을 붙인 이 작품은 슈트라우스가 세상을 하직하면서 남긴 '음악적 유언' '백조의 노래' 이다.

죽음을 앞둔 84세의 대작곡가가 들려주는 작별 인사답게 인생 여정을 담담한 필치로 되돌아보는 깊이와 순수함이 악보의 곳곳에 배어있다.

슬프지만 침착하고 평화로운 노래다.
모든 것을 버리고 체념해야 얻을 수 있는 초월의 경지가 주는 내적 희열감이 풍부한 현악기의 사운드에 용해돼 넘쳐 흐른다.

R 슈트라우스는 평생 소프라노의 목소리에 강한 집착을 보였다.
조지 셸 지휘의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이 65년에 녹음한 음반(EMI) 에서 들려주는 당시 50세의 소프라노 엘리자베스 슈바르츠코프의 따사로운 음색과 숨결은 생의 무게에 짓눌려 신음하는 영혼들을 위로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 음반은 탁월한 R 슈트라우스 해석자인 조지 셸, 리릭 소프라노 슈바르츠코프, 그녀의 남편인 명프로듀서 월터 레게가 만나 이룩한 음반사의 쾌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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