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종양 수술, 내비게이션이 종양부위 콕 짚어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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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포항에 사는 주부 이모(57)씨는 몇 주 전부터 두통에 시달렸다. 급기야 최근에는 어지럽고 토하기까지 했다. 두통은 아침에 심했다가 점심 무렵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가라앉았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우연한 사고로 머리를 부딪히고 나서 뇌 MRI(자기공명영상)검사를 받았다. 뜻밖에도 두통의 주범은 뇌종양이었다. 이씨는 지난주 5시간이 넘는 뇌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초기에 발견돼 별다른 후유증없이 종양이 제거됐다. 이씨의 뇌종양 수술을 집도한 강남세브란스병원 뇌종양클리닉 의료진에게 뇌종양의 조기진단과 치료법에 대해 들었다.

강남세브란스 신경외과 이규성 교수(왼쪽)가 환자의 종양제거 수술을 하고 있다. 뇌는 최소 5시간이 넘는 정밀한 수술을 해야한다. [사진 강남세브란스병원]

젊은 사람, 여성에게 뇌종양 많아

뇌종양은 말 그대로 뇌에서 자라는 종양이다. 하지만 종양이라고 모두 암은 아니다. 수술을 받는 뇌종양 환자 암인 경우는 40%에 그친다. 나머지는 양성종양이다. 신경외과 이규성 교수는 “위나 대장 등에 생긴 양성종양은 죽음과 직결되지 는 않는다. 하지만 뇌에 생긴 양성종양은 뇌간이나 중요한 뇌조직을 눌러 생명을 앗아간다”고 말했다.

 국내에선 매년 4500명의 새로운 뇌종양 환자가 생긴다. 결코 희귀암이 아니라는 것. 특히 소아에서는 전체 암 중 20~40%를 차지할 정도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현재 뇌종양으로 치료 받는 환자는 2만여 명으로 추정한다.

 전이성 뇌종양과는 달리 원발성 뇌종양은 비교적 젊은 연령대에 빈발한다.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10년간 뇌종양치료를 받은 환자를 분석한 결과, 30~40대가 전체 환자의 44.9%로 나타났다. 성별로는 여성이 남성보다 1.5배 더 많다.

 뇌종양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유전적 소인이 있긴 하지만 부모가 뇌종양이라고 반드시 자녀에게 생기는 것은 아니다. 필요 이상의 방사선 조사(照射), 유독화학물질의 흡입 등이 일부 확인된 유발 원인이다. 기타 특정 바이러스의 감염·뇌손상·전자파 노출 등이 위험 요인으로 제기되고 있지만 아직 근거가 부족하다.

방사선으로 종양 서서히 사멸시키는 요법도

뇌종양이 발견되면 종양을 떼 내는 수술을 한다. 뇌종양이 생긴 위치를 파악한 뒤 두개골을 절단하고 뇌종양만 떼 낸다. 빽빽이 들어선 다른 뇌신경과 정상 뇌는 다치지 않아야 하므로 수술 시간은 최소 5시간, 많으면 24시간을 넘는다. 이규성 교수는 “특히 두개저(뇌의 가장 밑바닥)부분 종양을 제거하려면 수많은 신경과 기관을 뚫고 지나가야 해 30시간이 넘게 수술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근엔 종양부위만 염색되는 특수약물, 종양의 위치 정보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네비게이션장치 등이 개발돼 보다 수술이 안전하고 정확해졌다.

 방사선 치료도 한다. 토모테라피 HD같은 기기는 뇌종양을 보다 정밀하게 조사할 수 있어 조직의 손상을 최소화하면서 종양을 제거한다. 하지만 칼로 절제하는 것처럼 한번에 완전히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 이규성 교수는 “2년 여에 걸쳐 서서히 종양을 사멸시킨다”고 말했다.

 항암치료는 제한적으로 쓰인다. 이규성 교수는 “다른 기관과 달리 뇌에는 유해물질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혈관-뇌장벽’이라는 인체보호막이 있다. 항암제가 잘 유입되지 않아 잘 쓰지 않았지만 최근 개발된 약제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아침에 심한 두통, 구토, 청력 이상 땐 검사를

다른 암도 마찬가지이지만 뇌종양은 특히 조기에 치료를 할수록 예후가 좋다. 사고· 운동·언어·시각기능 등을 관장하는 뇌세포가 빈틈없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뇌종양이 조금만 커져도 이러한 뇌 기능이 손상된다.

 뇌종양의 대표 증상은 두통과 구토다. 뇌는 단단한 두개골로 보호돼 있다. 종양이 커지면 뇌압이 상승하면서 신경중추를 압박해 두통이나 구토가 생긴다. 새벽녁에에 심하고 지속되는 시간도 2~4시간으로 긴 편이다. 마비 증상도 나타난다. 운동기능을 담당하는 뇌 영역이 압박을 받으면 팔다리의 힘이 빠지거나 저리다.

 시야가 좁아지는 것도 대표적인 증상이다. 자라나는 종양이 시각을 담당하는 부위를 압박할 때다. 특히 시야 양 바깥쪽이 흐려진다. 물체의 중심부나 정면은 잘 보이지만 옆에 사람이 지나가는 것, 또는 공이 얼굴 옆으로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없다면 뇌종양을 의심한다.

 치매로 착각하기도 한다. 종양이 뇌 앞쪽에 생기면 전두엽에 이상이 생겨 성격 변화가 나타난다. 이규성 교수는 “치매 증상이 있으면서 두통을 호소한다면 신경외과에서 진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뇌종양은 조기 검진만이 최선의 예방법이다. 50대 이후라면 내시경검사처럼 최소한 5년에 한번씩 뇌 MRI를 찍어보는 게 좋다. 특히 원인 모를 두통, 청력·성기능 이상이 생길 때도 진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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