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한국이 외국자본 놀이터인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42면

유럽 경제 위기가 다시 불거지면서 서울 시장에서 유럽계 자금을 중심으로 외국자본의 유출이 심상치 않다. 이로 인해 코스피지수는 1840 선까지 떨어졌고,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180원 선을 위협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완전 개방된 금융시장에서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며, 인위적으로 막을 수 없는 노릇이다. 예전과 달리 우리 방파제도 든든해졌다. 외환보유액은 3168억 달러로 넉넉히 쌓여있고, 외채가 4000억 달러를 넘었지만 대외채권은 이보다 훨씬 많은 5109억 달러에 이른다. 경상수지도 흑자다. 일단 대외건전성은 충분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외국자본이 아직도 한국을 ‘봉’으로 보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최근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가 우리 정부에 투자자·국가소송(ISD)을 제기하겠다고 통보했다.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서 정부의 부당한 개입으로 피해를 봤다는 주장이다. 이에 앞서 론스타는 국세청에 외환은행 매각에 따른 양도소득세 3900여억원을 돌려달라며 경정청구를 낸 바 있다. 한국을 상대로 무차별 소송전에 나서겠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또 최근 서울증시에 외국 투자자들의 공매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 매도한 뒤 주가가 하락하면 싼값에 되사서 돌려주는 합법적인 투자의 하나다. 우리나라도 공매도를 허용하고 있지만, 주식을 빌리지 않는 무차입(無借入) 공매도는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주가조작과 시장질서 교란을 막기 위해서다. 그러나 지난달 무차입 공매도를 한 외국인 투자자 7명이 적발됐다. 공매도가 집중된 셀트리온과 LG전자 등은 임상시험 실패와 같은 악성 루머까지 퍼뜨려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내린 혐의가 짙다.

 이제 한국 시장을 만만하게 보는 외국인들의 편견을 바로잡아야 한다. 엄격한 룰을 세우고 적용해야 한다. 그동안 정부와 금융당국도 다양한 시도를 해온 게 사실이다. 은행세(외환건전성부담금) 도입과 외국인 채권투자 비과세 폐지, 선물환포지션제도 개선 등이 그것이다. 그 덕분에 지난해부터 단기 외채의 비중이 크게 줄어들어 대외 충격에 버팀목이 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머물러선 안 된다. 여전히 불법은 아니지만, 외국인들이 악용할 수 있는 회색지대가 폭넓게 널려 있기 때문이다.

 우선 론스타 사태에서 보듯 ‘조세회피’를 둘러싼 법적·제도적 장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현행 국세기본법의 조세회피 방지 규정은 너무 일반적이고 모호하다. 미국처럼 조세회피 혐의가 있는 거래는 기획재정부 장관의 명령으로 강제 정지시키고, 위법 거래는 강력히 응징해야 할 것이다. 외국과의 투자보장협정도 이중과세 방지라는 기본 취지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이를 위해 조세조약에 따른 비과세 대상을 지금처럼 포괄적으로 규정하지 말고, 보다 구체적으로 열거하는 방식을 도입해야 할 것이다. 참고로 미·일(美日) 조세조약의 경우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회사의 거래에는 비과세 규정을 제한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의 불법 행위에 대한 제재도 강화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지난 10여 년간 단 한 차례 불법 공매도를 단속했을 뿐이다. 또한 무차입 공매도를 하다 적발돼도 과태료가 5000만원에 그쳐 솜방망이나 다름없는 실정이다. 앞으로 국내 헤지펀드가 허용되면서 공매도의 비중이 높아질 게 분명한 만큼 투자종목과 투자자별로 공매도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불법 공매도에 대한 처벌 수위도 한층 높여야 할 것이다.

 앞으로도 금융시장 개방과 자유화는 지속돼야 한다. 이는 아시아 금융허브로 가기 위한 필요조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유로운 시장이 자유방임과 혼동돼선 안 된다. 오히려 시장 질서를 교란하는 행위는 엄격히 관리하고 감독해야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을 만들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는 외국자본의 양면성을 수없이 경험했다. 이미 우리는 아시아에서 외국자본 유출입에 따른 변동성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됐다. 이제는 외국자본의 순기능을 확대하고, 부작용은 바로잡아야 할 때다. 지나친 외자 선호 정책에서 벗어나 더 이상 우리 금융 시장을 그들의 놀이터로 방치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