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축제에 벌ㆍ나비 왜 안 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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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오후 3시 장미원 축제가 열리고 있는 과천 서울대공원 테마가든. 형형색색 290여종의 장미와 불타는 듯 붉은 빛깔의 양귀비가 5만여㎡의 들판에 피어 있었다.

하지만 한 시간 동안 돌아다녀도 나비는 찾아볼 수 없었다. 벌도 10여마리밖에 띄지 않았다. 통상적으로 벌은 3월, 나비는 4월말이면 활동을 개시한다.

이곳에서 만난 사진가 장모(58)씨는 “30년간 사진을 찍어왔지만 몇 년전부터 꽃밭에 벌과 나비를 찾기 힘들어졌다”며 “올해 벌 가뭄이라 안성의 한 배밭에서는 사람들 수십명이 벌 대신 동원돼 꽃가루 수정에 매달리는 진풍경도 목격했다”고 말했다.

‘봄의 전령’ 벌과 나비가 늦봄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다른 꽃 축제에서도 상황은 매한가지였다. 같은 날 방문한 용인 에버랜드 장미축제에도 100만 송이가 넘는 장미가 전시돼 있지만 벌과 나비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얼마전 끝난 고양국제꽃박람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곤충전문가들은 신선한 꽃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쓰이는 살충제와 광택제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꽃 축제에서는 응애ㆍ총채벌레 등 해충 피해로 꽃이 망가지는 것을 막기 위해 폐장 이후 살충제를 뿌린다. 서울대공원 관계자는 “어디까지나 관람객의 편의를 위해 약한 농도의 약을 쓴다”고 밝혔다.

살충제는 인체에 유해하지 않지만 벌과 나비의 활동에는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국립농업과학원 곤충산업과 김남정 박사는 “선진국에서는 생태 개념의 정원을 선호해 약 살포를 지양한다”며 “외적인 면만 보면 당장 보기 예쁘고 관람하기 편하겠지만 주최측과 관람객들도 자연과 미래 환경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꽃 축제가 벌어지는 곳의 환경이 나비의 서식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도 이유로 꼽힌다. 나비는 종별로 애벌레가 먹을 수 있는 풀이 한두가지로 정해져 있다. 배추흰나비는 배추, 호랑나비는 산초나무, 제비나비는 황백나무 등이다. 나비는 아무 꽃이나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주로 이런 풀이 있는 곳에 머물며 근처에 있는 꽃의 꿀을 빤다는 것이다. 홀로세생태연구소 이강운 소장은 “꽃 박람회 주위에 나비가 원하는 식물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며 “식물이 다양하지 못한 도심에서 나비를 보기 힘든 것도 이런 이유”라고 말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 기후가 벌과 나비의 활동과 번식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5월 들어 하루 건너 온도가 10도 이상 차이나는 날이 생기는 등 기상 이변으로 벌이 냉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한국양봉협회 이상철 연구소장은 “3월 중순만 해도 자주 눈에 띄던 벌들이 5월부터 사라지기 시작했다”며 “강원도에서는 7월에야 보이는 잠자리가 벌써 나타나는 등 기상 이변으로 곤충도 큰 영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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