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스타열전 (49) - 블라디미르 게레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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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던질 곳이 없다. 그는 원바운드에 가까운 공도, 머리 높이로 날라오는 공도 모두 쳐낸다."

자신감에 관한한 누구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존 스몰츠(애틀란타 투수)의 푸념이다.

1993년 3월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열렸던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트라이아웃 캠프. 한 17세 소년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오토바이를 얻어타고 온 소년의 모습은 볼품없었다. 스파이크는 짝이 안 맞았고, 헐렁한 스타킹은 연신 흘러내렸다.

하지만 당시 몬트리올의 관계자들의 눈에는 장대한 기골의 소년이 범상치않게 느껴졌다. 이들은 소년의 송구와 런닝만 보고 단번에 계약을 체결했다. 이 시대 최고의 야구천재 블라디미르 게레로(25)는 그렇게 엑스포스의 유니폼을 입었다.

단돈 2천달러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한 게레로는 지난 98년 팀과 5년간 2천8백만달러의 장기계약을 맺었다. 연간 560만달러의 연봉은 매년 몬트리올이 팀운영을 위해 선수장사에 나서는 현실을 생각하면, 실로 파격적인 액수였다.

'히스패닉계의 대부' 몬트리올의 펠리페 알루 감독은 게레로를 종종 로베르토 클레멘테에 비유한다. 1966년 내셔널리그 MVP, 12번의 골든글러브, 통산 3천안타, 통산타율 .317 등, 클레멘테는 알루가 눈으로 직접 목격한 최고의 타자였다.

팀이 처음 그를 보낸 곳은 도미니칸 교육리그였다. 이 곳에서 게레로는 24경기 출장, 타율 .424 12홈런 35타점을 올리며 리그의 모든 타격기록을 바꿔놓았다. 1994년 루키리그 걸프코스트리그 MVP, 1995년 싱글A 사우스애틀랜틱리그 타격왕, 1996년 더블A 이스턴리그 MVP, 스포팅뉴스 선정 '올해의 마이너리거'까지.

마이너리그를 평정했던 게레로가 본격적인 빅리그 공략에 나선 것은 1997년이었다. 그러나 97년은 그에게 가장 암울한 해이기도 했다. 발목, 손등, 무릎등 부상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95년에 처음 다쳤던 무릎은 그의 다이나믹한 주루플레이에 큰 약영향을 미쳤다.

시즌 내내 몸이 성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90경기에 나서며 타율 .302 11홈런 40타점의 성적을 기록한 게레로는 부상의 악령을 떨쳐버린 1998년부터 무시무시한 기록들을 남기기 시작했다.

98시즌 38개의 홈런을 기록한 게레로는 홈에서만 23개를 날림으로써 게리 카터가 보유했던 몬트리올의 홈구장 홈런기록을 경신했으며, 99년에는 131타점으로 팀 최다타점기록을 세웠다. 또한 두달간에 걸쳐 만들어진 31경기 연속안타의 기록은 90년대 이후 메이저리그의 최고기록이었다.

지난 해 게레로는 홈런생산에 가장 어려운 구장중 하나라는 올림픽 스타디움을 홈구장으로 쓰면서도 본인의 홈런기록을 44개로 늘려놨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빅리그 입문 처음으로 출루율이 4할을 넘었다는 것이다.(.410) 심지어 첫 40타석에서 삼진을 전혀 당하지 않았을 정도로 게레로의 정확성은 일취월장했다.

좋은 타격의 제1수칙은 볼을 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게레로에게 이 원칙은 통하지 않는다. 그에겐 스트라이크가 아닌 공을 안타로 만들어낼 수 있는 충분한 타격기술과 강하고 긴 팔이 있다.

치퍼 존스가 '자신이 경험한 최고의 어깨'로 인정했을 만큼 게레로의 송구능력은 또 다른 천재 앤드류 존스(애틀란타 중견수)와 함께 메이저리그 최고를 다툰다.

평범한 플라이를 떨어뜨리는 등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반복하며 98년 17개의 에러를 기록했던 게레로는 급기야 99년에는 외야수로서는 상상도 못할 19개의 에러를 범했다. 그러나 그 중 10개는 첫 34경기에서 기록한 것이었으며, 나머지 126경기에서는 9개밖에 기록하지 않았다. 지난 시즌의 10개는 수비의 안정성마저 점점 좋아지고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게레로는 얼마전 두 명의 좋은 친구를 잃었다. 가장 친한 벗, 론델 화이트는 시카고 컵스로 떠났으며, 형 윌튼은 신시내티로 떠났다. 아직까지 영어를 못하는 그에게 둘은 그동안 큰 힘이 되어왔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최고'를 향한 게레로의 질주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앤드류 존스와 그를 두고 벌어지는 논쟁에서 더 많은 전문가들이 게레로의 손을 들어주는 것은 오로지 야구에만 몰두하는 성실성이 높이 평가됐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라는 미국 스포츠시장에서 러시안의 이름을 가진 도미니칸, 블라디미르 게레로. 오늘도 그는 프랑스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스페인어 "비엔!"(bien : 좋아)을 외치고 타석에 들어선다.

당당히, 아주 당당히.

블라디미르 게레로 (Vladimir Guerrero)

- 몬트리올 엑스포스 우익수
- 1976년 2월 9일 도미니카공화국 니자오 바니 출생
- 190cm 93kg
- 우투우타
- 연봉 : 350만 달러(2000시즌)
- 소속 : 몬트리올 엑스포스(1996~ )
- 통산성적 : 572경기 695안타 타율 .322 136홈런 404타점 174볼넷 37도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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