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창家係 대이은 노래의 '달인' 조관우

중앙일보

입력

7년 전 가을 어느 오후였다. 대학 졸업을 앞둔 20대 중반. 젊음은 불안했고, 사랑은 여의치 않았다. 혼자였다. 커튼을 친 방은 어두웠고 낡은 의자는 삐걱거렸다. 문득 라디오를 틀었다.

처음 듣는 목소리. 이윽고 온 몸을 훑어가던 소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의 첫 노래 '늪'이었다. 흔히 '몇 옥타브를 오르내린다'고 자랑하는, 노래 좀 한다 하는 여느 가수들의 가창력을 한 순간에 무색하게 만드는 그 매끄러우면서도 힘 있는 가성에 현기증까지 일어났다.

시간은 쉼 없이 흘러갔고 그는 어느덧 여섯번째 앨범을 세상에 내보내려 한다.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세상에 자식을 떠나보내는 애비의 심정이 된다고 한 것은 작가 이문열씨의 말이었던가.

설을 앞두고 서울 청담동의 녹음실 바이브 스튜디오에서 만난 그는 또 한번 자식들을 떠나보낼 채비로 분주했다.

"5집까지는 모든 노래가 처음부터 저를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이었어요. 이번엔 윤일상r井연준씨 등 실력있는 작곡가들이 자유롭게 노래를 만든 다음 그 노래들을 제가 소화하는 형태로 진행했습니다. 색다른 경험이었고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었습니다."

열두 곡이 실릴 새 앨범 '연(緣)'은 40인조 오케스트라가 동원됐는가 하면 여성 그룹 디바가 래퍼로 참여하는 등 다채롭게 꾸며졌다. 오후 10시. 마무리 작업 중이던 그는 일을 중단하고 녹음한 새 노래들을 들려줬다. 빌려 쓰는 스튜디오에서는 1초가 곧 돈이다.

음반사 관계자는 안절부절 못했고 녹음 기사는 작업을 서두르기를 바라는 눈치였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노래를 틀어주며 한 구절 한 구절 설명하는 그는 상기돼 있었다. 자랑스러운 얼굴이었다.

"보세요, 이 놈들이 세상에 새로 선보일 제 자식들입니다"고 말하고 싶은 듯했다. 피아노 독주와 함께 체념 어린 듯한 독백으로 시작하는 타이틀곡 '사랑했으므로'는 웅장한 현악기 연주로 이어지면서 듣는 이에게 한없는 슬픔을 안겨준다.

5음계를 이용해 동양적 신비감을 가득 담은 '연' 역시 그의 매력이 1백% 발휘되는 곡이다. 그의 독특하고 탁월한 가창력을 이야기하자면 명창 박초월 여사를 할머니로, 조통달씨를 부친으로 둔 혈통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10대 때 아버지가 박살낸 기타가 일곱개였나, 아니 여덟개였던가…. 1만 명이 도전해서 한 명도 성공 못하는 게 '소리'라고, 그런 힘든 일 저더러는 하지 말라며 때리기도 많이 하셨어요."

하지만 그는 숙명처럼 노래를 불렀다. 1994년 데뷔. 콘서트를 연 세실 극장. 연일 만원 사례를 이룬 마지막 날 조용히 공연장을 찾은 아버지는 공연이 끝난 뒤 "내 아들이지만 참 장하다, 열심히 소리 공부해라"는 짧은 말로 아들의 음악을 승인했다.

그를 이야기할 때 많은 이들이 R&B·국악·트로트 등의 단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어느 단어로도 한마디로는 그를, 그의 음악을 규정할 수 없다. 그의 노래는 그냥 '조관우 스타일'인 것이다.

"10대든 40대든 모두에게 통하는 무언가가 있는 음악이어야죠. '조관우'라는 이름을 걸 수 있는 음악을 해야 시간이 흘러도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모두 합쳐 5백만 장 이상 팔린 그의 앨범들은 대표적인 스테디 셀러들이다.

"3집을 내고 전주에서 공연할 때였습니다. 갑작스런 정전으로 40분 동안 공연이 중단됐어요. 지하 공연장은 온통 어둠이었습니다. 그 40분 동안 단 한마디의 야유도 없고 단 한 명도 자리를 뜨지 않더군요. 아, 내 음악을 인정해 주는 사람들이 있구나. 지금도 그 날을 생각하며 그런 팬들을 위해 음악을 합니다."

불우 어린이를 위한 자선 공연을 비롯해 수많은 콘서트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가 그 흔한 TV 가요순위 프로그램에는 나가지 않는 이유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단언컨대 현재 한국에서 10대부터 60대까지 세대를 초월해 팬을 가지고 있는 가수는 그 하나뿐이다.

혹시 우리 세대에 통일이 된다면, 그래서 온 민족이 함께 하 축하 공연이 열린다면 조관우라는 가수는 꼭 그 무대에 초청받을 것이다. 그때 어떤 노래를 할지 궁금하다.

" '꽃밭에서' 를 부르고 싶습니다. 그런 좋은 날이 온다면 모두가 손잡고 꽃밭을 둘러싼 가운데 꼭 그 노래를 하고 싶네요. "

그의 노래를 들으며 감격의 눈물을 흘릴 그날이 빨리 오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조관우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는 조인스닷컴 기자 포럼(http://club.joins.com/club/jforum_cjh) 참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