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조기업 맞춤 컨설팅 ④ 화남피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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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화남피혁 임직원이 이 회사가 제조하는 피혁 원단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 원단은 신발·가방·옷·소파 등을 제조하는 데 사용된다. 오른쪽부터 김석기 상무, 관리부 민은영 사원, 여승태 대표, 영업부 안주희 사원, 홍기원 과장, 김지동 과장, 당승만 과장. [변선구 기자]

기업은행 김범규(41) 컨설턴트는 올해 초 피혁원단 제조업체인 화남피혁의 컨설팅 신청을 받고 매우 난감했다. 재무구조나 실적 모두 약점을 찾기 힘들었다. 업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도 흠잡을 데 없었다. 이런 곳이 컨설팅 신청을 했다는 게 의외일 정도였다.

 사실 화남피혁은 한국보다 외국에서 유명하다. 신발·가방·옷·가구 등에 사용되는 소가죽 원단을 생산해 미국·유럽의 유명 브랜드에 납품한다. 700억원이 넘는 한 해 매출의 95%를 수출로 거둬들인다. 화남피혁은 일찍부터 품질 경쟁력에 신경을 썼고, 해외 트렌드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했다. 경쟁사들이 원가를 낮추기 위해 중국·동남아로 공장을 옮길 때 ‘가격 대신 품질과 기술력으로 승부를 내겠다’며 국내 생산을 고집했다. 또 시장 상황과 해외 고객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 미국·중국·일본 등 세계 곳곳에 현지 사무소를 개설해 운영해 왔다. 덕분에 1986년 창업 이래 여러 차례 ‘무역의 날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성실납세자로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고민은 있었다. 창업주 여우균(73) 회장에 이어 가업을 잇고 있는 여승태(41) 대표는 “겉으로 드러난 좋은 경영지표에 안주해 혁신을 주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100년 이상 지속되는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가 필요했고, 오랜 기간 거래해온 기업은행에 컨설팅을 맡겼다”고 말했다.

 김 컨설턴트는 2월부터 회계사 등 전문가와 함께 화남피혁의 재무·조직·인사·관리 등을 샅샅이 점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소기업이 아닌 ‘중견기업’의 잣대로 화남피혁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회사가 어느 정도 제 궤도에 올라 있는 만큼 이젠 중견기업으로 도약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화남피혁의 숨어 있던 약점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화남피혁의 재무구조와 현금흐름은 안정적이었지만, 최근 4~5년간 매출은 700억원대로 제자리 걸음이었다. 매출의 성장이 멈추다 보니 수익성은 조금씩 나빠지고 있었다. 또 여러 업체로부터 원자재를 구매하다 보니 공급이 불안정했을 뿐더러 단가도 높았다. 기업은행은 매출원가를 줄이고 원자재 가격 변동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장기 계약을 통해 원자재를 구매할 것을 권했다. 또 기술력에서 확실한 비교우위를 점하고, 신사업·신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릴 것을 조언했다. R&D 조직 신설로 연간 8000만원 이상의 절세효과를 보는 방안도 제시됐다.

 중견기업으로 자리잡기 위한 인재육성 시스템도 미흡했다. 몇몇 핵심 인재에 대한 업무 의존도가 높다 보니 이들이 회사를 떠날 경우 타격이 불가피했다. 업무 영역도 모호한 부분이 많았고, 부서 간 소통이 안 돼 업무에 차질이 생기는 경우도 있었다. 기업은행은 자체적인 세미나와 학습조직 등을 운영해 다양한 사례를 공유하고, 고참의 현장 노하우·경험을 후배가 전수받는 시스템을 갖출 것을 조언했다. 또 외부 기관의 직무 교육은 물론 각종 인터넷 교육과 포상제도를 활성화해 개인의 역량을 키울 수 있게끔 했다.

 김 컨설턴트는 “주요 이슈를 단기·중기·장기로 분류한 뒤 단기 핵심과제부터 우선적으로 구체화시킬 것을 주문했다”며 “초급 관리자의 전결 권한을 대폭 늘려 성취감을 높이고, 부서 간 생산정보를 공유해 효율적인 공정관리가 이뤄지게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여 대표는 4월부터 컨설팅 결과를 회사에 접목했다. 불과 2개월 정도가 지났지만 곳곳에서 나아지는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쉴 새 없던 여 대표에게 생각할 짬이 생겼다. 그는 “그간 회사의 세부적인 일까지 신경 쓰곤 했는데, 결재권을 업무 책임자에게 넘긴 뒤부터는 좀 더 큰 그림의 경영전략을 짤 수 있게 됐다”며 “각 부서의 요구사항, 생산관리 정보 등을 공유하는 시스템 덕분에 전략 실행까지의 시간도 절반 이상 단축됐다”고 설명했다.

 조직 분위기도 변했다. 내부 학습 등을 통해 직원과의 소통을 늘린 뒤로부터는 각종 제안이나 아이디어가 쏟아지고 있다. 조직원들이 자연스럽게 창의적인 생각을 공유하는 바텀업(Bottom-up) 방식의 커뮤니케이션 체계가 구축되고 있는 것이다.

화남피혁 여우균(73) 회장이 1986년 창업한 회사로 신발·가방·소파 등에 쓰이는 우피(牛皮) 원단을 생산한다. 한 해 매출은 700억원대로 주로 해외 유명 브랜드에 납품하고 있다. 고교를 중퇴한 여 회장은 2002년 ‘이우장학회’를 설립,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매년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화남피혁 이렇게 달라졌다

● 건실한 재무구조에도 매출 정체, 수익성 악화
→ R&D 투자 확대. 원가 상승 위험 줄이려 장기 구매 계약 체결.

● 비전 및 미션 미비, 한두 명의 인재에 의존
→ 주요 과제를 단기·중기·장기로 구분한 뒤 선택과 집중. 업무 분장 명확히.

● 인재육성 시스템 부재, 직원들의 매너리즘
→ 내부 학습조직 활용해 노하우 전수. 외부 기관의 교육 프로그램 마련.

● 비효율적 공정 관리, 타부서와 정보공유 미흡
→ 생산관리 시스템 구축. 부서간 연동된 통합 프로세스 마련. 자료: IBK기업은행·화남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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