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기초는 인문학 '교육-인간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모두가 교육문제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누구도 정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국가의 운명은 청소년의 교육에 달려 있다' 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나, 입만 열면 학문과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공맹(孔孟) 의 그 숱한 가르침이 아직도 유효한 것은 그 때문인지 모른다.
대학입시 준비가 '교육의 모든 것' 이 돼버린 우리의 교육 풍토만이 문제가 아니다.

'입시 지옥' 인 한국 뿐만 아니라 '교육 천국' 인 독일에서도 고민은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독일은 일류대학이 따로 없어서 우리의 수능시험격인 대학입학 자격시험(아비투어) 에만 합격하면 어디든 자기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으며, 학비가 공짜인 나라다.

또 대학이 직업을 선택하는 데 그다지 큰 역할을 하지 않고, 따라서 우리처럼 너나 없이 대학에 들어가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런 독일에서도 교육이 위기에 처했다는 얘기는 자주 들린다.

'21세기를 맞은 지금 우리의 교육은 과연 어떠해야 할까' . 1978년부터 97년까지 독일 함부르크대에서 영문학을 가르친 디트리히 슈바니츠 교수의 신저 『교육-인간이 알아야 하는 모든 것(Bildung:Alles, was man wissen muss.49.80마르크) 』은 오늘날의 교육 위기를 보편적 인문과학 지식의 결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처방을 제시한다.

이름 그대로 '교육이란 거대 담론의 장(場) 에 들어가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 을 소개한 책이다.

따라서 유럽의 문화와 역사를 간명하고 알기 쉽게 서술한 인문 교양서적에 속한다.
그러나 역사와 문화에 대한 해석이 독특하다.

열한살 때까지 스위스 광산촌에서 학교도 안다니고 지내다 어느날 갑자기 고등학교 상급반에 들어간 뒤 뮌스터.런던.필라델피아.프라이부르크대에서 영문학.역사.철학 등 닥치는대로 섭렵한 그의 학문적 기질이 그대로 묻어 난다.
그만큼 자유분방하다.

보통 인문과학 서적이 길고 지루한 문체로 독자들에게 인내심을 요구하는 반면, 주제별로 딱딱 끊어 주는 춘추필법의 서술이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한다.

5백44쪽에 달하는 이 책은 크게「지식(Wissen) 」과「능력(Koennen) 」의 2개 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제1장「지식」은 다시 독일의 교육현실에 대한 서문에 이어 '유럽의 역사' '유럽 문학사' '미술사' '음악사' '대 철학자.이데올로기.이론.세계관' '성(性) 논쟁의 역사에 관해' 등 6개의 주제로 나뉜다.

'유럽의 역사' 편에서 슈바니츠는 보통 역사학자들이 그랬듯 서양문명의 두 젖줄인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으로부터 시작, 최근 발칸분쟁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거침없는 톤으로 서술한다.

그러나 성서의 사도 바울을 '기독교의 트로츠키' 로 표현한 것이나, 히틀러를 '모든 미친 놈들의 대장' 으로 희화화해 인류에 대한 그의 죄악을 다소 희석시킨 것 등은 학자적 진지성을 결여한 옥에 티다.

'프로이센' 이란 말 자체를 큰 소리로 떠들지 않는 독일 풍토에서 오스만 터키를 '동방의 프로이센' 으로 비유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비판거리다.

'유럽 문학사' 에서는 단테의 『신곡』과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셰익스피어.몰리에르.괴테.실러 등 유럽 대문호들의 작품세계와 꼭 읽어야 할 명작들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쇼.피란델로.브레히트.이오네스코.베케트 등의 이름을 가진 '정신병 환자' 들을 등장시킨 소극(笑劇) '고도 박사' 는 20세기를 대표하는 희극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명쾌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 한 토막.

- 이오네스코 : "…가장 나쁜 게 뭔지 아나, 샘?"
- 베케트 : "비평가 놈들!"
- 쇼 : "이오네스코는 안됐지만 제 혼자 놀아야 해. 그의 머리 속엔 아무런 생각이 없거든. "
- 브레히트 : "싸우지들 말아. 너희들 생각은 똑같아. 안개 속에 사라져 버린 한물 간 생기설(生氣說) 과 비참한 인생 철학 뿐이지. "

'미술사' 에서는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으로부터 르네상스→바로크→로코코로 이어지는 건축양식을 소개한 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인상파를 거쳐 현대 미술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간결하게 서술하고 있다.

다른 화가에 비해 벨라스케스를 비교적 길게 설명한 것이 특이하다.

'대 철학자' 로 그는 데카르트.홉스.로크.라이프니츠.루소.칸트.헤겔.마르크스.쇼펜하우어.니체.하이데거 를 꼽아 비교적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제2장「능력」에서는 좀더 구체적인 지식, 즉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분야를 조명하고 있다.
'언어의 집' '책과 저술의 세계' '세상의 남과 여를 위한 국가학' '지능.재능.창조성' '우리가 알아서는 안되는 것' 등 6개 분야로 돼있다.

교양있는 유럽인이 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하는 내용들이다.
그러나 독자들을 학생으로 취급, 너무 시시콜콜한 것까지 소개하고 있어 다소 부담스럽다.
'…국가학' 에 나오는 '프랑스 사람과 교제할 때의 규칙' .

"품위있고, 과장될 정도로 분명한 프랑스어로 말하려고 노력하라. 첫 대면인사나 미안하다는 말, 헤어질 때의 인사 등을 절대 잊어선 안된다. …프랑스인들은 위트와 재치, 언어 구사력, 수사법 등 모든 대화의 기술을 독일인보다 훨씬 더 높게 평가한다. "

부록으로 간추린 세계사 연표와 '세계를 바꾼 책들' 을 소개한 뒤, '더 읽을 책들' 이란 이름으로 곰브리치의 『젊은 독자를 위한 세계사』 등 50권의 도서를 주제별로 추천하고 있어 젊은 독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자기 전문 분야의 지식은 강하지만 인문 과학적 상식이 좀 약하다는 평을 받는 독일인들 사이에 당연히 인기가 높다.
권위있는 슈피겔지 선정 베스트셀러 비소설 부문에서 현재 2위를 달리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