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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아빠를 오빠라고 부르면 아빠는 나의 외삼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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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려운 것이 부부간의 호칭이다. 나를 낳아준 남자를 아버지나 아빠, 나를 낳아준 여자를 어머니나 엄마라고 부르듯이 뭔가 확고부동한 호칭이 있으면 좋겠지만 부부간에는 그런 게 없다. 경우에 따라 다르고 사람마다 다르고, 기분에 따라 다르다.

 내 경우 함부로 부르지도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아내를 부를 때는 감히 이름을 부른다. 기분 좋게 술 마시고 늦게 들어가는 날이나 뭔가 크게 아쉬운 소리를 할 때는 가뭄에 콩 나듯 ‘여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일 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다. 남들은 아이 이름을 앞세워 아무개 엄마라고 부르기도 한다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나는 한 번도 그렇게 불러본 적이 없다. 집사람이 날 부르는 호칭은 예나 지금이나 ‘여기(요)’ 아니면 ‘저기(요)’다.

 제 코가 석 자인 처지에 남 얘기할 건 아니지만 요즘 20~30대 젊은 부부들이 서로를 부르는 호칭을 보면 솔직히 뭐가 뭔지 모르겠다. 가장 흔한 호칭이 ‘자기야’다. 남편도, 아내도 서로 그렇게 부른다. 부부는 일심동체라지만 둘 다 자기면 진짜 자기는 누구란 말인가. 더한 건 아내가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는 경우다. 결혼 전 부르던 호칭이 습관처럼 남은 것으로 이해는 되지만 결혼 후에도 그렇게 부르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오빠가 남편이면 근친상간이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헷갈릴 수밖에 없다. 엄마가 아빠를 오빠라고 부르면 아빠는 나의 외삼촌이란 소린가. 아니면 아빠를 오빠라고 부르는 엄마는 나의 고모란 소린가.

 엊그제 중앙일보(5월 24일자 2면)를 보면 조선시대에는 아내도 남편을 ‘자네’라고 부른 것으로 돼 있다.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에게 아내는 “자네를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 없어 빨리 자네에게 가고자 하니 나를 데려가 주소”라고 애절한 심정을 글로 적었다. 1586년 경북 안동에 살던 원이 엄마가 죽은 남편에게 쓴 편지다. 조선은 흔히 남존여비 사회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자네라는 2인칭 대명사로 서로를 부르고, ‘하소체’를 종결어미로 사용하는 등 부부가 대등한 관계였다는 것이다. 양성평등이 확립된 요즘 같은 시대에 아내가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는 걸 알면 죽은 원이 엄마가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원칙도 없고, 정설도 없는 게 부부간 호칭이라지만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을 담아 부르는 것이 최선 아닐까 싶다. 비록 닭살이 돋더라도 남편은 아내를 ‘여보’, 아내는 남편을 ‘당신’이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적절한 호칭 아닐까. 호칭이 달라지면 말투도 달라진다. 그래서 서로 ‘하소체’ 정도의 경어를 쓰게 되면 설사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최소한의 품위를 잃지는 않을 것이다. 부부가 서로를 존중해야 그걸 보고 자라는 아이들도 부모를 존중하게 된다.

 “여보, 그렇지 않소.” “그래요, 당신. 당신 말이 맞아요.”

글=배명복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