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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가 내력·생활상 담은 '종가 이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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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잎을 담은 모시 주머니를 밤새 연꽃 속에 넣어두었다가 연꽃이 꽃잎을 여는 아침 아이를 시켜 모시 주머니를 꺼내 차를 달인다. 차잎은 밤새 별과 달빛, 이슬을 맞으며 연꽃의 향과 성분을 가득 머금고 있다. 차가 달여지는 동안 4백여평의 연못이 내려다 보이는 활래정에 앉아 솔바람 소리와 연잎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즐기며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린다."

티백 녹차 정도를 마시는 것이 고작인 요즘 세상에 이건 호사스런 풍류가 있을까. 하지만 놀랍게도 '선교장' 이라는 이름으로 친숙한 강릉 전주 이씨 종가에서는 이런 풍류가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한배달 우리차 문화원장이자 성균관 여성유도회 중앙위원인 이연자씨가 펴낸 『종가 이야기』는 천년의 삶을 이어온 종가의 예(禮)와 멋.맛을 담고 있다.

2년여에 걸쳐 강릉의 전주 이씨, 안동 하회마을의 풍산 류씨, 아산 외암마을의 예안 이씨 문정공파, 영광 입석마을의 영월 신씨 종가 등 전국의 열일곱 종가를 방문해 눈으로 본 그들의 생활문화를 컬러 사진과 함께 알기 쉬운 필체로 옮겨놓았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전통문화가 그렇게 고리타분하지도 복잡하지도 않다' 는 발견에 있다. 논산 교촌마을의 파평 윤씨 노종파 윤증 종가의 설 차례상에 오르는 음식은 떡국 두 그릇과 식혜.간장 한 종지.나박김치.북어.오징어.대추.밤.곶감이 전부다.

조선시대 예(禮)에 관한 대표적인 교과서였던 김장생(金長生)의 '가례집람(家禮輯覽)' 을 들어 제사에는 차와 과일 한 접시, 그리고 후손들의 정성만 있으면 된다고 필자는 설명한다.

'격식과 법도' 를 제일로 치는 종가도 시류를 거스를 수는 없는 법이다. 형제들이 각자 집에서 제사음식을 장만해오고, 종손이 서울로 올라가 제사를 지내는 남원 호곡마을의 죽산 박씨 충현공파 종가나, 부엌을 현대식으로 개조하면서 18대(5백년)를 이어 살려온 부엌 아궁이의 불씨를 꺼뜨린 영광 입석마을의 영월 신씨 종가, 자녀의 학비 마련을 위해 진상품이던 가문의 전통약주 연엽주를 판매하기 시작한 아산 외암마을의 예산 이씨 문정공파 종가 등 삶과 함께 끊임없이 변모하고 있는 종가의 모습을 낱낱이 그려내고 있다.

필자는 여기에 설문에만 7시간이 걸리는 4백여 항목의 질문을 통해 종손과 종부의 목소리를 직접 녹여내는 작업도 잊지 않았다.

출생의례와 성인의례, 제례 순서, 제례 음식의 종류, 내림음식 만드는 법, 고유 인사법과 절하는 법, 복식 등 누구나 알아두면 좋을 정보도 함께 실어 가정의례 사전으로도 손색이 없다.
〈종가 이야기〉/ 이연자 지음/ 컬처라인/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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