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박찬호 연봉 '투수 넘버 7'

중앙일보

입력

1993년 12월 31일.

메이저리거의 꿈을 안고 태평양을 건너던 박찬호 수중에는 '더없이 소중한' 몇백달러가 전부였다.

넉넉지 못한 전파상집의 둘째아들로 태어나 고등학교 때까지 용돈을 타본 적이 없는 그는 한양대 시절에도 집에서 보내주는 용돈을 쓰지 않고 모아뒀다.

LA 다저스 입단이 결정되자 박은 그동안 모아둔 거금 1백만원 가량을 어머니에게 돌려줬다.

어머니는 다시 달러로 바꿔 혈혈단신 미국으로 떠나는 아들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로부터 만 7년이 지난 2001년 1월 19일. 박찬호는 9백90만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액수에 연봉 계약을 마쳤다.

이날 오전 에이전트 스콧 보라스에게 계약 타결 소식을 전해들은 박은 곧바로 부모님에게 계약 사실을 알렸다. 새벽잠을 깬 어머니는 "(그 돈으로) 좋은 일 많이 하라" 고 일러주었다.

박의 연봉 9백90만달러는 당초 기대한 1천만달러에 미치지 못하는 액수. 그러나 이미 메이저리그 사무국으로부터 '연봉 질서를 깨지 말라' 는 경고까지 들었던 다저스는 명분을 얻으면서 박의 심기도 거슬르지 않았다.

자유계약선수가 아닌 투수의 1년 연봉으로는 메이저리그 사상 최고액이다. 97년 사이영상을 받았던 페드로 마르티네스도 98년 8백만달러에 계약했고 한때 박찬호가 우상으로 여겼던 톰 글래빈, 존 스몰츠(이상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연봉은 이제 박찬호보다 적다.

팀 투수 가운데 연봉 '넘버 2' 로서 제2 선발의 자존심을 지켰다. 영원한 라이벌 대런 드라이포트가 5년간 5천5백만달러, 연평균 1천1백만달러를 받지만 올해 연봉은 9백40만달러다.

올해 메이저리그 투수 가운데 연봉 랭킹 7위지만 박의 가능성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투수 연봉 랭킹 10걸 가운데 박찬호처럼 1년 계약 선수는 아무도 없고 메이저리그 경력 6년 이하도 박찬호밖에 없다.

장기계약에 의한 프리미엄 없이도 7위에 올랐다면 자유계약선수가 되는 내년, 박이 올시즌 20승에 근접한 성적을 올릴 경우 메이저리그 연봉 역사를 다시 쓸 수도 있다.

꼬깃꼬깃한 단 돈 몇 백달러에서 시작된 박의 아메리칸 드림은 멋지게 꽃을 피웠다. 그러나 그의 신화는 이제 끝이 아닌 또다른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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