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진보당원 명부 오용해선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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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검찰에서 압수해 간 통합진보당 당원명부의 파괴력은 상당할 것이다. 진보당 강기갑 비상대책위원장의 표현처럼 당원명부는 “당의 심장”이다. 나아가 우리나라 진보정치 세력의 전모를 보여줄 수 있는 정보의 보고다. 그래서 검찰이 당원명부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두고 많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진보당 당원명부엔 2001년 진보정치세력이 공식 정당으로 활동을 개시한 이래 13년간 당에 입당하거나 탈당한 20만 명에 대한 신상명세와 활동내역이 들어 있다. 진보당의 당원명부는 다른 정당의 명부와 차원이 다르다. 진보당의 경우 진성 당원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당원이 다른 여느 정당보다 훨씬 중요하다. 진성 당원이란 직접 당비를 내고 당의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사람들이다. 다른 정당들의 경우 당원이란 당 차원에서 모집한 사람들이라 자발적으로 당비를 내거나 활동을 하는 경우가 드물다.

 진보당의 당원이야말로 진짜 열성 당원인 셈이다. 그만큼 이념적 색깔이 강하다. 그래서 진보당의 당원 명부를 보면 우리나라 진보 세력의 면면을 일일이 확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들의 활동내역, 그리고 당비(黨費) 흐름을 통한 자금추적까지 가능하다.

 이렇게 민감한 명부이기에 검찰이 이를 잘못 사용할 경우 ‘정당활동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물론 검찰이 진보당의 비례대표 부정선거에 칼을 빼든 것은 불가피한 면이 있다.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의원이 부정한 방법으로 뽑혀선 안 된다. 진보당은 명백히 부정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당내 파벌 갈등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외부에서 수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런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검찰의 수사는 신중해야 한다. 당원명부를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검찰의 개입은 부정을 수사하기 위한 차원에 그쳐야 한다. 헌법이 보장하는 ‘정당활동의 자유’를 침해해선 안 된다. 검찰의 수사는 기본적으로 비례대표 부정선거에 집중되어야 한다.

 우려가 광범한 것은 검찰의 태도 때문이다. 검찰은 압수수색 직후 매우 광범한 수사의지를 밝혔다. 부정선거만 아니라 이석기 당선자가 운영했던 CN커뮤니케이션즈를 중심으로 한 돈의 흐름, 중앙위원회 폭력사태의 책임자, 공무집행방해에 대한 수사까지 언급했다. 그러다 비판여론이 높아지면서 “당원명부는 비례대표 부정 수사에 국한해 활용될 것”이라고 물러섰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우려와 근심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당원명부가 당원들에 대한 개인적 불이익 등 진보세력 전체에 대한 보이지 않는 탄압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한 우려다. 검찰에 대한 불신 탓이다. 지난 2009년 시국선언에 가담한 공무원과 교사들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진보당의 전신인 민노당에 대한 광범한 수사로 확산됐던 경험 탓이기도 하다. 검찰은 부정을 척결하면서도 헌법상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지혜를 보여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