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정부가 ‘강제징용 배상’ 요구할 차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일제 강점기에 강제징용됐던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어제 나왔다. 징용 피해자 9명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소송에 대해 대법원이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각각 서울고법과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국 땅에 끌려가 강제 노역을 했던 이들이 70여 년 만에 배상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만하다.

 대법원은 징용 피해자 청구를 기각한 일본 최고재판소의 판단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식민 지배가 합법임을 전제로 일제의 국가총동원법과 국민징용령의 효력을 인정했던 일본 측 주장의 허구성을 지적했다는 점이다.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불법 강점(强占)으로 보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충돌한다”고 선언했다.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개인 청구권까지 소멸된 것은 아니다”고 제시한 것 역시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이다.

 이번 판결이 확정될 경우 해당 기업의 국내외 재산을 통해 징용자들의 피해를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동안 일본에서 진행된 소송의 경우 ‘동원 자체는 위법이 아니다’는 등의 이유로 기각됐다. 미국 법원에서도 ‘정치적 문제’라는 점 등을 들어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젠 정부가 나설 차례다. 강제징용 피해에 대해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보여야 할 것이다. 그간 정부는 일제 피해자 문제를 개인 차원의 일로 방치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경우 지난해 8월 “정부가 구체적인 노력을 다하지 않은 것은 위헌”이란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온 뒤에야 일본 정부에 양자 협의를 제안했다.

 앞으로는 강제징용에 대해서도 일본 측의 태도 변화를 지속적으로 촉구할 필요가 있다. 일본 정부도 “협정의 해석을 둘러싼 분쟁은 외교 경로를 통해 해결한다”는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협상에 응하길 바란다. 한·일 양국의 진정한 화해와 협력은 과거의 잘못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시작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