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영아 여론 女論

5월의 여인 해부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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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영아
명지대 방목기초대학 교수

“씻은 채로 말려서 수북이 일어선 머리(…) 그 검은 포도송이의 배경으로 5월만 한 때가 없다. 색채의 시절인 까닭이다. 무지개 속에서 에메랄드의 부분만을 오려 온 듯도 한 신선한 신록을 배경으로 하고 선 여인의 검은 머리야말로 일사천벽(一絲千碧)의 값있는 것이 아닐까.”

 잡지 『여성』의 1937년 5월호에는 재미난 특집이 하나 실렸다. ‘5월의 여인 해부도’. 남성 문인들이 5월 여성의 몸을 부위별로 예찬하는 글을 모아 놓은 것이다. 위의 인용문은 소설가 이효석이 여성의 머리카락이 5월에 얼마나 더 빛나는지를 묘사하고 있는 대목이다. 위 글을 필두로 안회남·박태원·함대훈·이석훈·홍난파·이태준·김광섭이 5월이 되면 여성의 몸이 어떻게 더 아름다워 보이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안회남은 5월 여인들의 눈에 대해 “맑은 하늘과 초록빛 동산과 만발한 꽃과 솔솔 바람 남풍이 모두 여인들의 눈동자에 더한층 향기 나고 윤택이 있는 비료가 되는 모양”이라고 찬미한다. 박태원은 5월이 돼 거리를 활보하는 여인들의 “얼굴 한복판에 바로 ‘내로라’하고 자리 잡은 온갖 형태의 코”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고 말했다. 함대훈은 “5월의 바람은 낙화 뒤에 오는 신록의 훈향으로 향그럽지만” 5월 여인의 입술은 “냉열(冷熱)의 양극”과도 같다고 표현했다. 이석훈은 5월이 되면 바닷가의 ‘조갑지(조개)’들이 “푸른 물결이 전해 주는 먼 바닷속 옛 고향의 그리운 이야기를 듣고자” 귓문을 힘껏 열듯, 5월 여인의 귀는 사랑의 달콤한 속삭임을 들으려 예민해진다고 봤다.

 또 홍난파는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늦은 봄 첫여름, 5월이야말로 조물주가 여인들에게 선사하신 가장 아름다운 절기”라고 말한다. 추워서 장갑을 껴야 하는 겨울이나 땀이 흘러 불쾌해지는 여름, 바람결에 손등이 트기 시작하는 가을과 달리 5월의 손은 그 자체로 곱다는 것이다. 특히 홍난파는 “미술적 작품에 비길 만한 아름다운 손보다도 나는 흙내 나는 시골여인의 손이 얼마나 대견하고 거룩한지 모른다”고 덧붙이며 노동하는 여성의 손에 대한 예찬으로 글을 끝맺었다. 이태준은 참새의 할딱할딱 뛰는 가슴이 “막 그네에서 내리는 여인의 가슴”을 떠올리게 한다고, 김광섭은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여인들의 각선미가 “낡은 역사의 미용법보다 정히 흥분된 새 요술이요 육체의 새 서정(抒情)”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 글들은 여성 예찬이자 5월 예찬이다. 5월에는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고 그중에서도 여성들의 아름다움이 가장 빛난다. 그런 5월도 이제 일주일 남았다. 5월이 다 가기 전에 우리도 이 찬란한 계절과 여성들에게 ‘아름답다’ 말해 보는 건 어떨까.

이영아 명지대 방목기초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