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 팔아 돈 벌던 시대는 이제 끝!

중앙일보

입력

9400만 달러의 4분기 손실로 휘청거리는 게이트웨이는 PC 가격 전쟁을 확대시키겠다고 선언했다. 한 애널리스트는 이를 두고 산업의 치킨게임이라고 일컬었다.

9400만 달러의 분기 손실로 휘청거리는 게이트웨이의 경영진들은 ‘산업의 치킨게임’, 즉 가격 전쟁을 확대시킴으로써 잃었던 소비자들을 되찾아 오겠다고 장담했다(치킨게임이란 양쪽에서 충돌 직전까지 차를 달리게 하는 담력 시험).

하지만 이런 전략은 이미 부진한 세계 경제로 인해 허덕이고 있는 PC 산업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라는 것이 애널리스트들의 주장이다. 수입을 잠식할 뿐 아니라 결국은 일부 컴퓨터 제조업체들이 시장을 전적으로 포기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게이트웨이는 월스트리트가 기대했던 수준을 훨씬 밑도는 4분기 실적을 발표한 이후 이런 가격 조치를 발표했다. PC 매출의 15% 하락으로 타격을 입은 게이트웨이는 3천명 이상의 근로자, 즉 자체 인력의 12.5%를 해고하는 것을 비롯해 사업 운영을 합리화하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취할 예정인 수많은 단계적 조치들을 상세히 설명했다.

게이트웨이는 그런 삭감정책을 전면적으로 단행할 예정이지만, 훨씬 더 공격적인 가격 정책을 취할 것이라는 회사측의 공언은 광범위한 의미를 함축하게 될 것 같다.

게이트웨이 CEO인 제프리 와이첸은 지난 11일 애널리스트들과의 통화에서 “우리는 모든 제품의 가격 수준면에서, 그리고 모든 부문의 소비자와 비즈니스 시장에 걸쳐 좀더 경쟁력있는 회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게이트웨이의 새로운 결심을 보여주기 위해 와이첸은 17인치 모니터와 컬러 프린터를 포함한 933MHz 펜티엄 III 시스템을 선전했다. 현재 게이트웨이는 이 시스템을 며칠 전보다 무려 300달러나 인하된 999달러에 판매하고 있다.

와이첸은 “이는 우리 계획이 가격면에서 매우 경쟁력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서로 죽고 죽이는 대학살

베어 스턴스(Bear Stearns)의 시장 애널리스트인 앤드류 네프는 미국내 5대 PC 제조업체들에 의한 이번 조치가 이미 벌어진 가격 전쟁을 더욱 확대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네프는 “가격 책정이 정말 공격적이고 심해지고 있다. 이것은 산업의 치킨게임이다”라고 논평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저가 컴퓨터들이 소비자들의 환영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장기화될 경우 제조업체들에게 손해를 입힐 뿐 아니라 일부 PC 제조업체들이 시장을 떠날 수밖에 없도록 만들 것”이라고 했다.

네프는 “PC 산업은 수용능력 과잉 상태이기 때문에 합병을 필요로 한다. 누군가는 업계를 떠나야만 한다. 올해 안으로 10대 PC 제조업체 중 두 업체가 시장을 빠져나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IDC 애널리스트인 로저 케이는 이런 분명한 위기에도 불구하고 PC 제조업체들은 가격을 인하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케이는 “그들은 반드시 재고를 없애야 하기 때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하면서, PC 산업이 앞으로 6개월 동안 점점 많은 어려움에 처할 것이라고 말하고, 또 “나는 전부터 이것이 서로 죽고 죽이는 학살 분위기같다고 주장해왔다. 지금은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비참했던 크리스마스

현저한 가격 인하는 지난 12월 중순부터 시작됐다. 와이첸은 이 기간을 “우리 업계 사상 최악의 크리스마스 판매 시기“라고 일컬었다.

추수감사절 이전에 컴팩 컴퓨터와 휴렛 팩커드같은 일부 PC 제조업체들은 제품들을 비축해 두고 재고를 늘렸다. 예상되는 연휴시즌의 판매 증가를 대비한 것이었으나 전혀 현실화되지 않았다. 그 결과 증가하는 재고비용에 직면한 PC 제조업체들과 그 파트너들은 판매되지 않은 재고품을 창고에서 없애기 위해 가격을 인하하고 리베이트를 제공했다.

이런 가격인하 정책은 PC 제조업체들이 경쟁력을 유지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산업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하지만 와이첸은 그런 공격적인 조치에도 불구하고, "선반 위에서 그대로 무용지물이 돼버릴 재고품들이 수없이 많이 남아있다“고 밝혔다. 와이첸은 가격이 조만간은 안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ING 베어링즈(ING Barings)의 시장 애널리스트인 롭 시라(Rob Cihra)는 “올 상반기 동안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1분기에는 가격정책이 아주 공격적으로 이뤄지는 환경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그는 컴퓨터 제조업체들이 어려운 시기를 겪을 것이라고 예상하면서도 올해 미국 주요 기업들이 PC 시장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즉 “경쟁력이 가장 적은 PC 벤더는 사실 IBM과 HP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은 누구보다도 오랫동안 사업을 유지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시라는 지속되는 가격 전쟁에서 밖으로 밀릴 가능성이 가장 높은 업체들은 아시아에 있는 많은 기업들을 비롯해 이류, 삼류 기업들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반기에는 호전된다?

하지만 PC 판매 침체와 더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가격 전쟁이 주요 컴퓨터 제조업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은 이미 분명한 사실이 됐다.

시라는 “델의 인력채용은 분명히 뜸해졌거나 중단됐다. 컴팩은 벌써부터 그들의 인력을 축소하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밝혔다.

지난 11일 HP 역시 컴퓨터 및 기타 하이테크 장비에 대한 수요가 저조해 현 분기의 수입이 기대 수준 이하로 떨어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거대 컴퓨터 회사인 HP가 벌써 2분기 연속으로 월스트리트의 전망에 부합하지 못한 것이다.

시라는 올해의 PC 판매 전망을 요약하면서 “저조한 수요와 공격적인 가격책정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앞으로 6주간은 매우 암울한 주가 될 것이다. 하지만 3분기 및 4분기에는 상황이 호전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악화되는 경제가 하반기에는 PC 산업이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을 무너뜨린다고 지적했다. 즉 “현재 가장 큰 의문점은 경제가 계속해서 침체되고, 기업 IT 지출이 벼랑으로 떨어질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모든 예상이 빗나가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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