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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 부채나, 정부 부채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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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상헌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지난 4월 초 정부 과천청사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가 한국 공기업의 신용등급을 투기등급인 Ba3까지 내릴 수도 있다고 경고했기 때문이다. 줄곧 높은 신용도를 유지해 왔고, 그것을 자랑하던 정부로서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봄빛을 받으며 소풍을 즐기고 있던 참에 느닷없는 비바람을 만난 셈이다.

 공기업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다.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을 들자면 ‘자연독점’에 근거한 이론이다. 한 개의 기업이 생산을 담당할 때 두 개 이상의 기업이 생산하는 것보다 비용이 낮아지는 경우를 일컫는다. 그런데 독점권을 인정받은 기업은 가격을 높여 이윤을 증가시키려 한다. 이 때문에 정부는 특정 기업(공기업)에 독점권을 부여하되 엄격한 가격통제를 가한다. 철도·수도·전력·지하철 등이 강력한 정부 통제에 저항하지 못하는 이유다.

 불행히도 이론은 이론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딱히 필요하지 않는데도 공기업을 설립하거나, 국민을 위한 저렴한 가격은 뒷전이고 정치적 목적을 우선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방만함으로 대표되는 공기업의 행태가 질타의 대상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이치다.

 공기업을 감독할 책임을 진 정부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방만’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다. 1980년대 영국의 대처 정부와 미국의 레이건 정부 이후 ‘작고 효율적인 정부’는 전 세계적 조류가 되었다. 대한민국도 예외가 될 수는 없었고, 민영화와 공기업 경영평가와 같은 제도적 수단을 통해 나름의 효과를 거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공기업 사장과 임원 인사를 둘러싸곤 낙하산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공기업은 오직 ‘위’만 쳐다볼 뿐 국민의 복리는 저 멀리 밀려나게 마련이다. 공기업을 통한 정치적 이익 추구는 인사에만 그치지 않는다. 정치적 목적을 위한 사업을 공기업에 떠넘기기 다반사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공기업의 돈으로 하기도 한다. 4대 강 사업에 필요한 돈을 수자원공사의 채권 발행으로 충당한 것이 대표적 예다.

 이렇다 보니 공기업의 부채는 눈덩이가 된다. 지난해 공기업 부채가 330조원이나 되고, 준정부기관과 기타 공공기관의 부채를 합하면 464조원에 이른다. 같은 해 정부가 진 빚이 423조원이니 모두 합하면 887조원이 되고, 이것은 국내총생산(GDP)의 70%를 차지한다. 더 큰 문제는 부채가 늘어나는 속도다. 2010년 대비 2011년의 공기업 부채 증가율은 62%나 된다. 지난해 한 해 동안 8조4000억원의 순손실이 발생한 상태에서 늘어난 부채라는 것에 주목하면 놀랄 일이 아닐 수 없다.

 공기업이 지고 있는 부채는 결국 국민 부담으로 귀결된다. 대부분의 공기업이 통상적인 정부 범위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정부 재정은 아직 튼튼하다고 우겨봤자 더 이상 이를 곧이들을 사람은 없다. 무디스만 해도 한국 정부가 공기업에 대해 지원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인정해 정부와 같은 A1 등급을 유지하지만 정책변화나 공기업의 재무상태가 악화될 경우 신용등급 하락이 있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공기업에 부채를 떠넘겨 정부 부채는 줄이고 사업은 그대로 추진하던, 꿩 먹고 알 먹던 시대는 끝났다는 의미다.

 사정이 이러한데 정부가 대책이라고 내놓은 것은 안이하기만 하다. 공기업으로 하여금 부채 저감 계획을 마련케 하고, 예비타당성 조사를 하고, 공기업 평가에 재무상태를 반영하겠다는 것들은 하나같이 근본적 대책이 되지 못한다. 공기업 부채 증가의 원인은 정치적 목적 추구와 정부 사업의 공기업 떠넘기기에 있다는 것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이를 근본적으로 막지 못하는 한 공기업 재무구조 개선은 그야말로 공염불이다.

김상헌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