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샘] VIP석 홍수… 피해는 청중의 몫

중앙일보

입력

A석 티켓을 선물로 받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가장 싼(나쁜)자리라면 기분이 어떨까.

오는 20일 예술의전당에서 베르디의 '레퀴엠'을 연주하는 아시아필하모닉 공연에서 가장 싼 자리(3층 전체와 합창석)는 3만원짜리 A석. 나머지 자리는 S석(5만원)·R석(7만원). 10만원짜리 VIP석도 2백50석이나 된다.

좌석등급의 인플레 현상이 심각하다. 식음료와 무료주차권을 제공하는 것이 VIP석의 취지였으나 팜플렛도 제공하지 않고 VIP석을 남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B석, C석이 없는 A석이란 무의미한데도 말이다.

팜플렛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1백석을 20만원짜리 VIP석으로 내놓은 런던필하모닉 내한공연, 1백50석을 7만원짜리 VIP석으로 내놓은 뮤지컬 '명성황후'는 그나마 양심적이다.

또 예술의전당의 '아주 특별한 만남'처럼 커플석(1매 5만원)1백쌍에게 협찬사가 15만원 상당의 화장품을 제공한 것도 충분히 납득이 간다. 문제는 비싼 값에 음료수를 끼워팔거나 무조건 VIP석을 남발하고 보는 경우다.

지난해 예술의전당이 주최한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내한공연과 송년제야음악회도 로비에서 간단한 음료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2층 객석 대부분을 각각 12만원·9만원짜리 VIP석으로 발행했다.

음료수를 마시기 위해 1층 로비로 내려가야 하는 2층 관객의 불편을 덜기 위해 식음료 시설을 보강하기는 커녕 이를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한 것이다.

공연장이 앞장서서 VIP석을 남발하고 청중의 허영심을 겨냥해 사실상의 가격 인상을 주도한다면 VIP석·R석을 고무줄처럼 늘인 다음 이를 초대권으로 뿌리는 공연기획사들의 상혼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R석도 S석도 없애고 다시 A석부터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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