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구인광고 낚시질로 女 납치해…악몽의 51시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7면

서울경찰청이 인터넷 구직광고를 보고 찾아온 20대 여성을 납치한 혐의로 검거한 김모씨(오른쪽)와 허모씨를 20일 이송하고 있다. [뉴시스]

악몽 같은 51시간이었다. 괴한에 납치된 20대 여성이 침착한 대응으로 외상 하나 없이 무사히 풀려났다. A씨(23·여)는 지난 15일 인터넷 구직사이트에서 ‘고졸 이상, 주 5일 근무, 월급 200만~250만원’이라는 조건의 구인 광고를 봤다. A씨는 당장 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자신을 사장이라 소개한 김모(30)씨는 다음 날 오후 면접을 보자고 했다. 김씨는 “차량을 타고 사무실로 이동해야 하니 일단 보문역 출구로 나오라”고 요구했다.

 16일 오후 약속 장소인 서울 지하철6호선 보문역에 도착한 A씨는 김씨의 흰색 카니발에 올랐다. 그런데 주변에 있던 허모(26)씨가 갑자기 옆자리에 앉더니 A씨의 이마를 때리며 “고개를 숙여라. 반항하면 죽는다”고 위협했다. 김씨와 허씨가 구직 광고를 가장해 납치의 덫을 놓았던 것이다. A씨는 현금카드를 뺏기고 몸이 묶였지만 소리를 지르지 않았고 계좌번호와 비밀번호를 묻는 질문에도 순순히 답했다. 범인들은 A씨를 망우리 공동묘지에서 다른 차에 옮겨 싣고 경북 칠곡의 무인 숙박업소로 향했다. 당시 허씨는 위협을 위해 칼을 소지하고 있었지만 A씨가 차분히 대응해 사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김씨는 자정 무렵 A씨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딸을 납치했다. 현금 5000만원을 딸의 계좌로 보내라. 경찰엔 신고하지 말라”고 협박했다. 겁에 질린 A씨 어머니는 1000만원을 입금했다. 허씨가 A씨를 감시하는 새 김씨 혼자 서울로 올라와 18일 오후부터 현금을 인출하기 시작했다.

 그 시각 경찰은 A씨의 계좌에서 돈이 인출된 곳에서 폐쇄회로TV(CCTV)를 확보하고 김씨의 인상착의를 확인했다. 결국 범행 사흘 만인 18일 오후 7시45분쯤 서울 용두동에서 김씨의 오토바이를 발견하고 추격전 끝에 김씨를 붙잡았다.

 모텔에 남은 허씨는 A씨의 몸을 묶고 눈을 가렸지만 입 부분은 숨을 쉬도록 막지 않았다. 허씨는 “이미 다른 사람도 이렇게 ‘낚시’한 적이 있다”며 협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텔에 감금된 42시간 동안 A씨는 이성을 잃지 않았고 허씨의 지시에 따랐다.

 이날 오후 10시 경찰은 칠곡에서 허씨를 검거하고 A씨를 구출했다. 구출된 A씨는 “끔찍하고 다시는 생각하기 싫다”고 말했다고 한다. 경찰은 김씨와 허씨를 인질 강도 혐의로 20일 구속했다. 경찰조사 결과 김씨는 5300만원의 빚을 갚기 위해 한 달 동안 ‘랜섬(ransom)’ 등 납치를 다룬 영화를 보고 치밀하게 준비한 것으로 드러났다. 범행 일주일 전부터 PC방에서 도용한 주민등록번호로 일자리 사이트 세 곳에 허위 구인 정보를 올렸던 것으로 조사됐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