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지승 감독의 영화 〈하루〉 관심

중앙일보

입력

영화 〈하루〉 (한지승 감독.20일 개봉)는 관객의 눈물선을 자극하는 얘기다. 소재가 너무나 비극적이다. 이 세상 부모라면 가장 아파할 아기의 질병. 단 하루도 살지 못하는 무뇌아를 낳은 젊은 부부의 좌절과 비애가 일렁인다.

그런데 깔끔함이 돋보인다. 그 누구도 측량할 수 없는 아픔을 그리되 전혀 칙칙하지 않다.속절없이 울음만 토해내는 최루물이 아니다. 오히려 마음을 에는 '천형' (天刑)을 그리면서도 화면은 왜 저토록 깨끗한지 때론 그 의도적 연출이 얄미울 정도다.

〈순애보〉〈불후의 명작〉〈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등 최근 물밀듯 선보인 멜로영화 가운데 〈하루〉는 슬픔의 깊이에서 단연 압권이다.

청춘의 실연이나 외사랑이 아닌, 인간의 손으론 어쩔 수 없는 아이를 둔 부부의 속깊은 배려와 가없는 자식애를 담아내기 때문이다.〈하루〉는 크게 보면〈편지〉(1997년)와〈약속〉(98년)의 연장선에 있다.

뇌종양에 걸린 남자와의 서글픈 인연을 그린〈편지〉나 깡패조직의 보스와 여의사의 이뤄지지 않는 사랑을 그린〈약속〉처럼, 우리의 여린 마음을 후벼댄다. 또〈편지〉처럼 상큼한 전원, 흩날리는 눈꽃, 밤하늘 별 등 아름다운 정경이 눈물의 농도를 짙게 하는 장치로 동원된다.

하지만〈하루〉의 눈물은 비교적 절제된 편이다.

결혼 6년만에, 네 차례의 인공수정을 거쳐 겨우 얻은 뱃속의 아이가 어느날 갑자기 무뇌아로 판정받는 부부의 얘기치곤 눈물을 아끼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상황을 비트는 식의 농담과 경쾌한 코믹 장면을 군데군데 끼워넣어 줄거리의 무거움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고소영과 이성재의 연기도 그럴듯하다. 전도연.심은하와 함께 '여배우 트로이카' 로 불리면서도 뚜렷한 대표작이 없었던 고소영은 〈하루〉로 그의 영화를 선언할 수 있을 것 같다.

트레이드 마크인 톡톡 튀는 발랄함을 고스란히 간직하면서도 무뇌아를 출산하는 어머니의 날벼락 같은 비운을 무리없이 소화했다.

임신이 안되자 남편의 출장지까지 따라가 "옷을 벗어라" 고 명령할 땐 특유의 당찬 태도가 살아 있고, 막바지에 아이를 떠나보내며 장기기증 동의서를 달라고 요청할 땐 예전에 볼 수 없었던 비장함이 느껴진다.

노력파 배우로 소문난 이성재의 호흡도 좋다. 아내의 기쁨과 슬픔을 넉넉하게 껴안되 때론 철부지 같이 장난도 치는 남편역에 도전했다. 임신 사실을 알고선 팬티차림으로 동네를 스트리킹하는 무모함과 아이가 태어나자 곧바로 동사무소로 달려가 주민등록등본에 자식 이름을 올리는 섬세함을 보여줬다.

이처럼〈하루〉는 기쁨과 슬픔이 쌍곡선을 이루는 영화다.〈고스트 맘마〉와〈찜〉을 연출했던 한지승 감독은 관객을 웃기고 울리는 재주가 있다. 자식을 잃는 말못할 고통을 장기기증과 입양이란 더 큰 사랑으로 풀어가는 구도도 다분히 대중적이다.

아쉽게도 주변인물의 생동감은 다소 떨어진다. 어리숙하면서도 자상한 산부인과 의사, 인정머리라곤 도대체 찾을 수 없는 간호사, 부모가 없는 조카(고소영)를 키우려고 결혼도 포기한 이모 등 조연들은 단지 이들 부부의 얘기를 도와주는 들러리로 다가온다.

그래서 감정의 선명도는 높아지는 대신 작품의 현실감은 다소 희생되는 모양새다.

〈NOTE〉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에 타계한 대시인 미당의 '내리는 눈밭 속에서는' 의 일부다.

영화 속에 소개되며 작품의 전체 분위기를 끌어가는 구절이다. 인생의 크나 큰 고통도 생각을 달리 하면 새로운 희망을 잉태할 수 있음을 일러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