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규제보다 투명성 택해 … 로비스트 1만 명 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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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플로리다주 의회 건물 로비 전경. 주의회 의원과 로비스트들이 격의 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AP]

흔히 미국을 ‘로비의 천국’이라고 부른다. 우스갯소리로 의회보다 로비가 먼저 존재했다고 할 정도다. 미국에서는 로비를 1791년에 제정된 수정헌법 1조 속 ‘청원권’의 하나로 규정한다. 수정헌법 1조는 ‘미 연방의회는 언론 출판의 자유나 집회의 권리, 불만의 시정을 위해 정부에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법을 만들 수 없다’고 돼 있다.

 그런 만큼 로비는 국민의 권리라는 개념에서 출발했다. 1832년에 생겨난 로비스트(lobbyist)라는 용어도 워싱턴의 백악관 옆 윌러드호텔 1층 로비에 정치인들을 만나기 위해 이해관계자들이 몰렸다는 데서 유래했다. 지금도 가끔씩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기금 모금행사가 열린다.

 미국에서 로비와 관련한 법의 특징은 규제보다 투명한 공개에 쏠려 있다는 점이다. 의회는 1946년 연방로비규제법(FRLA)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 법은 규제보다 로비스트의 등록과 활동내역 공개를 의무화한 법이다. 이후 로비를 받는 의원이나 공직자에 대한 규제가 약하다는 지적이 일자 95년 12월 로비공개법(LDA)을 만들었다. 이 법 또한 로비의 투명성을 유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현재 미국에선 이 법에 따라 로비스트나 로비회사는 6개월에 한 번씩 활동과 소득 내역을 공개해야 한다. 공개 대상에는 고객의 명단은 물론이고 로비활동 내역, 영향력을 행사한 법안의 번호, 로비활동에 쓰인 금액 등이 모두 포함된다.

 특히 제때 신고하지 않거나 부실하게 신고한 경우 최고 5만 달러(약 5800만원)를 벌금으로 내야 한다. 상·하원 사무국은 로비와 관련된 서류를 6년간 보관해야 하며, 시민들이 요구하면 언제든지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 로비의 자유를 최대한 허용하되 어두운 거래를 하지 말고 투명하게 하라는 의미다. 워싱턴에서 정치자금 백서를 발간하는 민간기구 ‘책임정치센터(CRP)’에 따르면 4월 말 현재 등록된 로비스트들은 1만200명이다. 법에는 자신의 업무시간 중 20% 이상을 유급 로비활동에 쓰는 사람을 로비스트로 규정한다. 실제 로비활동을 하는 사람은 더 많은 셈이다.

 미국에서도 로비의 위험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있다. 하지만 의회민주주의를 위해 필요한 비용이라는 인식이 더 크다. 버지니아주 하원의원인 마크 킴(민주)은 15일 “미국에선 유권자인 시민의 주장과 제안들이 정책을 만드는 사람에게 전달되는 통로가 로비”라며 “전쟁·교육·교통 등 모든 문제에 정치인이 전문가가 될 수는 없는 만큼 관련 분야의 대표나 전문가가 입법 과정에 참여하는 의회민주주의의 한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로비의 폐해 등을 견제하기 위해 투명성을 높이는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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