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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갤러리서 장욱진 화백 회고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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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생 그림과 술로 살았다. 그림은 나의 일이고 술은 휴식이니까. 나는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리며 내 몸과 마음을 다 써버릴 작정이다. 남는 시간은 술을 마시고. "

그림과 술밖에 몰랐던 천진한 기인 장욱진(1918~90). 박수근.김환기와 함께 한국 현대미술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장욱진의 10주기전 '해와 달, 나무와 장욱진' 이 2월 15일까지 서울 사간동 현대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그동안 먹그림전, 종이그림전 등이 열린 적은 있으나 일생을 정리한 회고전은 지난 95년 호암갤러리의 5주기전 이후 6년만이다.

그의 유화작품을 총 결산하는 이번 전시엔 1949년에서 90년까지의 대표작 70여점이 나와있다. 한국전쟁 와중에 고향인 충남 연기에 머물며 작은 갱지에 보리밭 사잇길을 가는 신사를 그린 '자화상' , 독실한 불교신자인 부인을 모델로 한 '진진묘' , 무성한 나무위에 집이 올라앉은 '가로수' ….

미공개작도 23점 포함돼 있다. '소' (53년) '아이들' (73년) '수안보 집' (80년) '까치와 호랑? (86년) '두 나무' (90년) 등이다.

해와 달, 나무와 집, 소와 까치, 가족 등 소박한 이미지를 정교하게 배치한 그림들은 대개 손바닥 만하다. "큰 그림은 집중할 수 없어 싱거워진다" 는 고인의 말대로다. 그 속에는 평화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 한국적인 삶과 꿈이 함께 담겨있다.

서로를 감싸는 가족들의 천진스런 모습, 따뜻한 느낌의 나무, 외로움을 달래주는 새 한마리, 장난스럽게 표현한 호랑이와 강아지….

충남 연기에 있는 그의 묘비에는 '심플한 그림을 찾아나선 구도의 긴 여로' 라고 적혀있다.

지난 60년 '그림만 그리려고' 서울대 교수직을 그만둔 장욱진은 서울 명륜동 집과 지방의 화실을 오갔다. 63년 남양주 와부읍 삼패리에 작업실을 차려 12년간 홀로 살았고 수안보(80~85년).신갈(86~90년) 등지를 떠돌았다.

그에겐 떠남이 구원이었다. 생계는 부인 이순경씨(80.이병도 박사의 맏딸)가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서 '동양서림' 을 운영하며 해결했다.

고인의 1남4녀 가운데 장욱진기념재단 이사를 맡고있는 장녀 경수씨(56)는 "아버지는 한때 교단에도 섰지만 시류(추상회화)에 한눈 팔지 않고, 돌아앉아 자기 그림만 그렸다" 면서 "만년에는 어떻게 하면 한국화의 맥에 닿을 수 있을까를 고심하다 마침내 맑고 투명한 유화의 세계로 나아갔다.

한번 시작하면 보름이 넘도록 계속해서 술을 마셨고 술이 깨면 며칠씩 계속 그림만 그리셨다" 며 '이 땅에서 가장 예술가답게 산 화가' 라고 회고한다.

전시를 계기로 그의 유화 7백12점을 한 데 모은 전작 도록(학고재)도 출간됐다. 김형국 서울대 교수의 '장욱진의 삶과 예술' 강연회(12일 오후 3시), 어린이 그림잔치(16일 오전 10시), 생가 및 신갈 작업실 방문(2월2일 오전 10시) 등도 예정돼 있다.
입장료 일반 3천원, 학생 2천원. 02-734-6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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