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란 용어가 이토록 모욕당한 적 없어 … 합리적 생각하는 다수가 주사파 이길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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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장

1982년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사건 배후로 구속됐던 김현장(62)씨가 최근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해 “이토록 진보란 용어가 모독당한 일은 없었다”고 말했다. 15일 서울 강남에서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다. 그는 “목숨 바쳐 정의를 지키는 게 진보다. 하지만 (진보당의 당권파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진보를 활용했다. 이는 역사의 흐름을 거스른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씨는 14일 인터넷 언론을 통해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18번 강종헌씨에게 공개편지를 썼다. “평양에서 제대로 교육을 받고 남파된 핵심 분자인 강씨는 자신의 조국(북한)으로 돌아가라”는 내용이었다. 두 사람은 사상범으로 감옥에서 만나 친구가 됐다고 한다.

 -왜 공개편지를 썼나.

 “신문에서 그가 의원이 된다는 걸 알았다. 저쪽(북한)을 조국으로 알고 저쪽 지존을 모시는 사람이 헌법기관이 되도록 놔둘 수 없었다.”

 -진보진영 안에 주사파가 여전히 존재한다는데 .

 “엄청 많다. 이번에 일부 드러나지 않았나.”

 -이번 사태로 주사파의 힘이 빠질까.

 “상당기간 살아남을 거다. 핵을 가지고 있는, 군에 의해 점령당한 북한을 베이스캠프로 하는 주사파 운동권은 생명력이 길 수밖에 없다.”

 -진보가 주사 이념을 극복할 방법이 없을까.

 “이길 수 있는 힘은 ‘합리적 생각을 하는 다수’로부터 나온다. 북한도 언젠가 개방을 통한 민주화의 길을 걸을 것이고, 그때가 돼야 문제가 풀릴 거다. 북에 다녀온 김영환·조유식이 깨달은 것처럼.”

 80년대 학원가에 주체사상을 퍼뜨린 김영환(서울대 법대 82학번)씨와 조유식(서울대 정치학과 83학번)씨는 91년 잠수정을 타고 북에 다녀온 뒤 지하조직인 민족민주혁명당을 만들었다. 그러나 북한의 실상을 본 이후 둘 모두 전향했다.

 김현장씨는 80년대 중반 교도소에서 조씨와도 만났다고 한다. 당시엔 조씨처럼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대학생들(NL계)이 무더기로 교도소에 들어올 때였다. 김씨는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뒤 무기징역으로 감형돼 청주교도소로 이감됐었다. NL계 학생들은 김씨에게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최초의 반미 테러’를 감행한 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김씨는 “나는 광주민주화운동과 미국의 잘못을 알리기 위해 방화사건을 기획했지만 조국이 대한민국이란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조국을 부정했다”고 전했다. 김씨는 “당시 학생들에게 ‘너희들이 가도 살 수 없는 나라가 북한이다. 그런 나라를 남들에게 선전하고 강요하지 마라. 주체사상은 20~30년대 빨치산 시절에나 맞는 이론이다’고 말해 자주 논쟁을 벌였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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