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연구원에 거는 기대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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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희태(밀레니엄심포니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악기를 처음 다루는 사람이 기초를 충분히 다지지 않고 고도의 연주 기술이 필요한 곡을 연주하려 한다면, 그 다음에 벌어질 일은 불 보듯 뻔하다. 기초를 다지는 일은 언뜻 보기엔 지루하고 쉬워 보이기 때문에 무시하고 넘어가기 쉽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은 응용과학 중심으로 성장하여 세계적인 수준까지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냈다. 전 세계적으로 애용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스마트폰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작년 후쿠시마 지진으로 일본의 부품공급에 지장이 생기면서, 의외의 사실이 알려졌다. 정작 우리나라 스마트폰을 구성하는 핵심부품들을 기초과학기술 기반 부품소재 산업이 발달한 일본 등으로부터 수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초에 대한 투자가 상대적으로 빈약했던 우리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몇 십년간 놀라운 경제발전을 해왔지만, 최근 들어서 잠재성장률의 하락과 기술무역수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Catch up' 전략과 응용과학만으로는 더 이상 큰 부가가치 창출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정부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을 통해 기초과학 육성에 나섰는데, 오는 5월 17일에 개원하게 될 기초과학연구원이 그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기초과학연구원은 노벨과학상 수상자 배출과 ‘기초과학 분야 세계 10대 연구기관’으로의 육성을 목표로 삼고, 이를 위해 첨단 연구시설을 갖추고 우수한 인재들을 모아 기초과학 연구에 힘을 쏟을 예정이라고 한다. 연구자들이 연구에만 몰입할 수 있는 연구 환경을 조성하고 그에 걸 맞는 대우를 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인재가 전부인 우리나라로서는 상대적으로 열악한 처우와 연구 환경 때문에 우수 인재들이 국외로 유출되는 일을 반복적으로 경험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기초과학연구원은 개원에 앞서 1차로 연구단장 10명을 선정·발표했는데, 기존과는 다른 선정 방식을 취했다고 해 사뭇 기대가 된다. 연구테마를 먼저 정하고 그에 맞는 연구단장을 선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우수한 인재를 먼저 뽑는 ‘사람중심’의 방식을 채택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연구단장으로 선정된 세계적 두뇌들이 연구원과 연구 분야를 자율적으로 정하여 독립적이고 안정적인 여건 속에서 연구를 하게 된다고 한다. 이처럼 연구자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보장하는 것은 쉽지 않은 시도이지만, 큰 성과를 기대해 볼 수 있는 만큼 가치가 있는 일이다. 음악도 어려운 형식과 규율에 묶여있을 때보다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상황에서 더 아름다운 소리가 나오기 마련이다. 그것이 바로 협주곡에서 독주자들이 자신의 기량을 뽐내기 위해 하는 카덴짜라고 하는 부분이다. 작곡자의 의도에 충실히 연주하던 독주자는 카덴짜에 와서 비로소 자신의 훌륭한 기량과 음악성을 관객들에게 속 시원히 들려주기 때문이다.

물론,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는 당장 그 성과를 손에 얻는 것을 기대하긴 어렵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단기적 성과 중심의 산업에 투자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기에, 우리나라가 기초과학에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없었던 그간의 현실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끈기 있게 계속해 나가기만 한다면 확실하게 성과를 얻을 수 있을 테니,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고가의 훌륭한 악기 하나가 내는 소리도 물론 아름답지만, 오케스트라가 가진 더 큰 감동의 힘을 나는 지금까지 수도 없이 경험했다. 오케스트라 구성원들의 조화로 각각의 악기들이 내는 고유의 소리들이 하나가 되어갈 때 사람들은 박수갈채를 보낸다. 기초과학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각 분야의 기초과학 연구가 튼튼하게 자리 잡는다면,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미래도 그 만큼 밝아질 것이다.

<이 기사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르며, 해당기관의 정보성 보도 제공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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