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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진의 시시각각

이정희의 이상한 고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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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진보·좌파 여성 정치인 중에서 이정희 진보당 공동대표는 독특한 인물이다. 정당 대표로는 상당히 젊다. 한명숙보다 25년이 어린 43세다. 그리고 똑같은 투사형이지만 박영선과 이미지가 다르다. 앳되고 여리다. 이정희는 서울대 법대, 사법고시, 학력고사 수석(인문계 여성)이란 기록을 가지고 있다. 추미애와 강금실도 사시에 합격했지만 ‘경이로운 공부벌레’는 아니었다.

 이정희는 2008년 민노당 비례대표로 세상에 등장했다. 많은 유권자는 참신한 이정희가 진보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했다. 폭력보다는 논리로 싸우고, 개혁을 외치면서도 법과 질서에 순응하는, 그런 변신을 원했다. 그러나 이정희는 그러지 않았다. 불법 시위 편에 서서 경찰과 싸우고 본회의장 바닥에 드러누워 울부짖었다. 대표가 돼서는 ‘최루탄 김선동’을 “윤봉길·안중근 의사”라고 했다.

 4·11 총선에서 이정희는 재선에 실패했다. 경선 여론조사 조작 사건 때문이었다. 지난 3월 27일 나는 ‘역사가 이정희를 거부한 이유’라는 글을 썼다. 그의 재선 실패가 어떤 운명인 것 같다고 주장한 것이다. “국가정신이 살아있는 한 적어도 6·25가 남침인지 북침인지 모르겠다는 이가 의회 지도자가 될 수는 없다”고 나는 썼다.

 2010년 8월 이정희 민노당 대표는 라디오에 출연했다. 청취자가 “6·25가 남침이냐 북침이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역사적인 논쟁들이 있다. (중략) 그 문제는 좀 더 치밀하게 생각해 나중에 다시 답을 드리겠다.” 이를 적시하면서 나는 “대한민국의 정당 대표가 6·25 침략자를 규정하는 걸 거부한 것”이라고 썼다.

 최근 이정희 대표가 나를 검찰에 고소했다. 자신은 6·25 침략자 규정을 거부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형식적으로는 그가 맞을지 모른다. 나중에 답하겠다고 한 거지 침략자 규정을 일부러 거부한 게 아니라면 말이다. 하지만 내용에선 그렇지 않다. 그가 보통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평범한 지식인이라면 그의 답변이 크게 문제될 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국회 의석을 지닌 정당의 대표다. 그렇게 중요한 정치지도자가 ‘6·25 도발자’ 문제에 답을 하는 태도는 많은 국민에게 영향을 준다. 더군다나 그 정당은 종북주의란 비판을 받고 있지 않은가. 그런 당의 대표가 6·25 책임에 애매모호한 입장이면 ‘종북(從北)’ 의구심은 더 짙어진다.

 6·25가 북한의 남침이라는 건 한국인이 한국어를 쓴다는 것과 같은 기초 상식이다. 초등학교 5학년 교과서에 나와 있다. 그런데 일부 좌파 지식인은 이상한 논리로 북한의 6·25 책임에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 왔다. 이런 판에 이 대표는 국민 상식으로 되어 있는 역사적 사실을 즉석에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많은 이가 이정희도 ‘혼란스러운 지식인’이라고 의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천안함 사건 때도 의심스러운 태도를 취했다. 그는 대북 규탄 결의안에 반대하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국정조사를 해야 할 국회가 이렇게 (북한의 소행이라고) 단정할 근거가 없다.” 북한 어뢰 잔해가 발견되고 6개국 국제조사단이 사실을 규명해 냈다. 그런데도 그는 조사 결과를 거부하고 국정조사를 요구했다.

 정치 지도자가 ‘6·25 남침’이나 ‘천안함 폭침’ 같은 역사적 비극에 분명한 목소리를 내는 건 일종의 의무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규탄해야 하는 것과 같다. 만약 이스라엘에서 나치의 유대인 학살 여부에 대해 “나중에 답을 드리겠다”고 하면 그 지도자가 정치적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대북관계 발언, 천안함에 대한 태도 등을 종합해서 나는 이 대표가 남침 답변을 유보한 것은 ‘침략자 규정을 거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이정희는 6·25 침략자를 규정하라. 또다시 6·25 발생일이 다가오고 있는 이때, 정당 지도자가 그렇게 하는 건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역사의 법정에 서야 할 이는 누구인가. 이정희 대표인가 칼럼니스트 김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