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view &] 창업과 ‘건축학 개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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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건축학 개론’이 한국 영화로서는 오랜만에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는 카피를 내세운 이 영화는 첫사랑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많은 이들의 심금을 잔잔히 울린다. 삐삐와 펜티엄 컴퓨터 같은 복고풍 소재, 주제곡인 전람회의 노래 ‘기억의 습작’은 1990년대에 청춘의 한 시절을 보낸 30~40대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영화 속에서 여주인공 서연을 위해 지어지는 집 또한 잔상을 오래 남긴다. 바다를 향해 낸 넓은 창이 인상적인 이 집은 제주도의 뛰어난 풍광을 끌어들인다. 필자 역시 저런 집에 살아봤으면 싶다. 창문을 열면 푸른 바다가 펼쳐지고 석양녘에는 붉은 노을이 거실을 물들이면 좋겠다. 밤이면 지붕 위로 수많은 별들이 쏟아질 듯 빛날 것이다. 또 폭풍우가 몰아쳐도 집에만 있으면 평화로움을 느낄 만큼 튼튼했으면 한다.

 이런 생각을 하노라니 집을 설계하고 건축하는 일이 사업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창업의 과정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에서 건축공학도가 기초과목으로 수강하는 ‘건축학 개론’에는 건축물이 갖춰야 할 세 가지 기본요건이 나온다고 한다. 건축물을 세운 목적을 충족시켜야 하고, 구조상 튼튼해야 하며,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창업에도 세 가지 기본 요건이 필요하다. 자영업처럼 조그마한 가게를 열든, 새로운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벤처기업을 세우든 다르지 않다. 우선 사업의 목적은 이윤을 남기는 데 있으므로 재화나 서비스를 팔아 수익을 낼 수 있어야 한다. 또 시장 상황이나 경기 변동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사업구조를 갖춰야 한다. 여기에 더해 판매하는 재화나 서비스가 고객을 감동시킬 만큼 아름답다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장밋빛 청사진만으로 창업하는 이가 많다. 통계에 의하면 매년 100만 명이 넘게 사업을 시작하지만 동시에 매년 80만 명 이상이 폐업한다고 한다. 약 60%의 중소기업이 설립된 지 5년을 넘기지 못하고 무너진다는 보고서가 있고, 직장에서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가 자영업에 나서지만 90%가 넘는 이들이 실패한다는 분석도 있다. 몇몇 청년기업인의 성공신화가 종종 회자되지만 실제 성공하는 벤처기업은 7%에 불과하다. 이처럼 창업 성공률이 낮다는 사실은 부실한 건축물처럼 현재의 창업 과정에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전문가들은 창업에 실패하는 이유 중 하나로 많은 창업자가 비교적 손쉬워 보이는 ‘폼 나는 업종’을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커피 전문점이나 베이커리와 같은 업종은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차별화할 요소가 없을 경우 실패할 확률이 높은데도 별다른 노하우가 없는 이들이 이 업종에 뛰어든다는 것이다.

 반복적인 창업 실패는 당사자뿐 아니라 나라살림에도 주름이 지게 한다. 특히 모든 자산을 쏟아 부어 자영업을 시작한 퇴직자들은 사업에 실패할 경우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 있다. 이는 세수의 감소와 복지부담의 증가로 이어진다. 창업 성공률을 높이는 것이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과제가 되는 것이다.

 성공적인 창업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아름다운 건축물을 짓는 것처럼 사람들의 이목을 끌 만한 사업 아이디어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기발하고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 티켓몬스터 창업자는 기존의 것과는 조금 다르게, 조금 더 쉽게 만드는 아이디어로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와 만족을 주는 것이 창업의 성공 비결이라 했다.

 다음으로 건축 도면을 그리듯 창업 아이디어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구체화해야 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자신의 입장에서 사업을 낙관적으로 분석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창업자의 역량이나 자금과 같은 투입요소뿐만 아니라 고객의 시선에서 객관적인 투자환경과 시장수요를 살펴야 한다.

 “점진적으로 해야 성공확률이 높아지고 2단계, 3단계 실패해도 재도전할 수 있다”는 어느 벤처기업인의 조언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프랜차이즈의 과장된 선전이나 주변의 말에 혹해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는 우를 범해서도 안 될 것이다. 영화 ‘건축학 개론’은 시나리오 초고가 나온 때부터 극장에서 관객에게 실제 상영되기까지 10여 년의 세월을 절차탁마했다고 한다.

 정부의 도움 역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개인이 혼자 힘으로 사업에 성공하기란 쉽지 않다. 공정한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고 에인절투자자를 육성해 많은 이가 창업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살아 있는 기업가 정신과 활발한 창업이야말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건강하고 아름답게 꽃피우는 것이다.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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