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승부사 기질 외교에서도 재현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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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작가 김정영씨의 사진 50점이 전시되는 `우리 독도`사진전이 다음달 3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 인도에서 열리고 있다.[연합]

노무현 대통령이 23일 발표한 '최근 한.일 관계와 관련해 국민 여러분에게 드리는 글'은 강경하고 단호한 어조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교과서 왜곡에 대해 "침략과 지배의 역사를 정당화하고 또다시 패권주의를 관철하려는 의도"라고 규정했다. "독도 문제는 대한민국 광복을 부인하는 행위"라고까지 지적했다.

역대 대통령들이 자제했던 일본 지도자의 실명까지 거론했다.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는 이전에 일본 지도자들이 한 반성과 사과의 진실성을 훼손하는 일"이라는 대목이다. 노 대통령은 "우리 정부는 (신사참배에 대해) 그간 직접적인 외교 쟁점으로 삼거나 대응조치를 하지 않고 넌지시 자제를 촉구하는 데 그쳤다"며 "그야말로 일본 지도자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바로 그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위해서였다"고 했다. "그러나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게 노 대통령의 방침이다.

노 대통령은 A4 용지 3장 분량의 이 글을 지난 19일부터 준비해 왔다. 주말엔 조세형.최상용 전 주일대사와 장시간 면담하며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사무처, 외교부의 관련 자료와 보고서도 통독하며 가다듬어 23일 오전 7시30분 윤태영 부속실장에게 건넸다.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노 대통령이 국민적 관심사인 한.일 관계에 대한 평가와 대응 논리를 국민에게 직접 전달하며 동의를 얻어야 할 필요를 느꼈다"고 설명했다. "일차적으로는 대국민 서한이지만 일본에 대한 메시지라는 측면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설명은 보다 분명하다. 그는 "지난 17일 정부의 한.일 관계 공식 성명에도 불구하고 고이즈미 총리와 일본 정부는 노무현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국내용'이라고 폄하하는가 하면 기존 입장에서 진전된 가시적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이번 기회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일 간 악순환의 고리를 차단하겠다는 단호한 추가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서한에서도 노 대통령은 "그간 정부가 나서지 않은 게 오히려 일본의 방심을 불러온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자성론을 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이 같은 입장 천명에 따라 한.일 갈등의 파고는 당분간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노 대통령도 "싸움이라고 한다면 이 싸움은 하루 이틀에 끝날 싸움이 아닌 지구전"이라며 "비장한 각오로 임하되 체력 소모를 최대한 줄일 줄 아는 지혜와 여유를 갖고 전략적으로 대응해 나가자"고 국민에게 요청했다. "각박한 외교전쟁도 있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 "사필귀정을 믿으며 우리의 요구는 반드시 역사의 응답을 받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래서 평소 자신의 정치 역정이나 정국의 고비마다 보여왔던 '승부사 노무현'의 모습이 외교관계에까지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www.joongagn.co.kr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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