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역전, 나는 1등이다] 서울대 인문학부 1학년 정연두씨의 반복학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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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3 때였죠. 제가 서울대에 가겠다고 했더니 다들 비웃었어요. 전교 280명 중 260등이었거든요.” 꼴등에 가까운 성적에 사고뭉치였던 정연두(18)씨. 가난을 원망하며 5년 넘게 방황한 그는 3년 뒤 호언장담한 대로 서울대 인문계열에 당당히 합격했다. 정씨를 문제아 취급했던 학교 교사들이나 함께 방황했던 친구들 모두 그의 변신에 놀랐다. 그리고 지금, 그는 자신처럼 사춘기를 방황하며 보내는 후배들의 멘토로 나섰다.

글=박정현 기자
사진=김진원 기자

성적이 꼴찌였던 정연두씨는 하루 18시간 반복학습으로 문제 유형을 파악한 뒤 전교 1등 자리에 올라섰다. [김진원 기자]

정씨의 방황은 초등 4학년 때 시작됐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빚보증, 입주 예정이던 아파트 부도…. 나쁜 일이 한꺼번에 터졌다. 정씨 가족은 살던 아파트를 떠나 단칸방으로 이사했다. 엄마도 일을 나가고 아버지는 하루 네 가지 일을 했다. 새벽까지 집에는 정씨와 누나 단 둘뿐이었다. 그가 집 밖에서 배회하던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 시작한 것은 이 무렵. 갑자기 찾아온 가난을 그는 견딜 수 없었다. “방황하고 나쁜 행동을 하는 것이 잘못된 일인지 알지만 이런 상황에선 참을 수가 없었어요.”

 방황하던 정씨는 중3 때 결국 사고를 쳤다. 학교에서 경고를 받게 되면서 그 동안의 나쁜 행동이 부모님 귀에 고스란히 들어갔다. 이 일로 어머니는 충격을 받아 쓰러졌다. 깨어났을 때 가장 먼저 아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다. 혼을 내는 대신 아무 말 없이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할 수는 없다』는 책을 건넸다. 방황하던 시절에도 친구처럼 지냈던 아버지도 “이제 안 그럴 거지?”라며 아들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네. 안 할게요” 아들은 대답하며 스스로에게 약속을 했다.

학습법 노하우 따라 하루 18시간씩 공부

이후 정씨에겐 목표가 생겼다. “부모님이 새벽에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들어오시는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 힘들었어요. 부모님을 호강시켜 드려야겠다고 결심했어요.” 학생으로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공부뿐이었다. 하지만 한 번도 공부를 해본 적이 없는 탓에 시작도 할 수 없었다. 우등생들에게 방법을 물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성적이 좋지 않아 학원도 받아주지 않았다. 꼴등을 할 때도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하지 않던 엄마가 챙겨줬던 학습법 책이 눈에 들어왔다. 『현근이의 자기주도 학습법』을 읽으며 자신에게 맞는 공부법을 찾았으며, 『포기하지 않으면 불가능은 없다』를 읽으며 공부 시간에 대해 생각했다.

 중3 겨울방학부터 고교 입학 전까지 하루 17시간씩 공부했다는 고승덕씨의 이야기를 따라 하며 그도 ‘고승덕 모드’에 들어갔다. 아침 10시에 일어나 새벽 4시 잠들 때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스톱워치로 시간을 재며 계획한 하루 공부 시간을 채우기 전까진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한눈 팔지 않으려고 휴대전화를 아예 부셔버렸다. “때론 밥하고 반찬 씹는 시간도 아까워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 적도 허다했어요.”

 처음엔 난관이 많았다. 수학 공부를 위해 시중에 나온 문제집 9권을 사서 세 번씩 풀었지만 한 번 틀린 문제는 계속 틀렸다. 개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개념서를 구입해 개념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영어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받아쓰기로 듣기 실력을 길렀는데 친구들은 한 단원(17문제)을 듣는데 20분이 걸리지만 그는 한 문제를 받아쓰는 데만 20분이 걸렸다. 걸어 다닐 때도 단어장을 들고 외웠다. 불빛이 없는 길을 걸을 땐 손전등을 이용했다. 하루 18시간 그는 수학과 영어 공부를 반복했다.

 인문계고에 턱걸이로 입학한 정씨는 첫 중간고사에서 전교 97등을 했다. “공부를 늦게 시작해 기본기가 부족하니 놀 수가 없었어요. 남들 쉴 때 저는 꾹 참고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았죠.” 그 결과 두 달 뒤 치른 기말고사에서 전교 1등에 올랐다.

반복하면 유형 절로 잡히고 공부법 터득

정씨는 ‘반복학습’을 성적 역전의 비결로 꼽았다. 다섯 번 이상 공부하고 나면 문제 유형이 저절로 보였다. 국어는 교과서를 다섯 번 이상 읽었다. 처음 두 번은 한 글자도 빠짐없이 읽고, 세 번째는 중요한 것만 봤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더 중요한 내용만 읽어 시간을 줄여 나갔다. 수능 언어는 문학과 비문학의 영역에 따라 푸는 방법이 정해져 있다. 예컨대 비문학 과학·기술 지문은 원리와 과정, 순서가 무조건 나오고, 그림 3점 문제를 순서대로 대입해 가며 풀면 된다. 언어 지문은 화제 분류를 잘하고, 경제지문은 인과관계를 확인해야 한다.

 수학은 개념서 다섯 번+인강 네 번+문제집 다섯 번을 풀었다. “풀었던 문제를 또 푸니까 유형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문제가 뭘 요구하는지 금방 알게 됐어요. 여러 권의 문제집을 푸는 것보다 한 권을 여러 번 푸는 편이 도움이 됐어요.” 문제를 반복해 풀다 보니 풀이방법까지 저절로 외워졌다.

 외국어는 교과서를 줄줄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외웠다. 문장을 외우니 구조가 눈에 들어왔다. 수능 준비는 기출 문제를 반복해 풀며 유형을 정리했다. ▶통념-비판 지문은 통념에 대한 문장이 나오면 뒤에 이를 반박하려는 글쓴이의 생각이 나오고 ▶묻고 답하기 지문은 물음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이 나온다. ▶실험 지문은 실험할 내용에 대한 문장, 실험 과정, 결과를 시사하고 ▶문제점과 해결책 지문은 앞에서 문제점을 지적하면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이 나오는 지문이다. “문제 풀기 전 지문의 성격을 파악하면 지문 전개 방향을 예측해 중점적으로 읽어야 할 부분을 빠르게 찾을 수 있어요.”

 정씨는 초·중 시절 오랜 시간 방황을 했다. 공부를 해야겠다 마음먹었지만 주위에 도움을 받을 사람이 없어 힘들었다. “그 시절 저에게 멘토가 있었다면 시행착오를 덜 겪었을 거예요.” 그는 자신과 같은 경험을 겪고 있는 후배들에게 멘토가 되기로 했다. 메일과 전화로, 직접 찾아가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공부해서 남 줘라.” 그가 경험을 통해 얻은 새로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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