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진보당은 공당 자격 있는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통합진보당의 경선 부정 실태는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다. 과연 정당으로서 기본 자격을 갖추었는지 의심스럽다. 더 큰 문제는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당내 파벌싸움에 매몰돼 있는 당 지도부의 행태다.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형태의 부정이 매우 광범하게 저질러졌다는 것은 단순한 ‘선거관리 부실’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적 절차의 중요성에 대한 무지(無知)와 무감각(無感覺)이 당내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당활동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당들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원칙은 있다. 적법한 절차에 따른 공정한 경쟁은 그 최소한의 합의다. 진보든 보수든 이런 최소한의 원칙을 지켰을 때 비로소 제도권 정당정치권에 들어설 자격이 주어진다.

 그런데 진보당은 이런 최소한의 의무조차 무시했다. 마치 군부독재시절 지하 운동권 서클을 연상케 한다. 열악한 정치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는 것을 용인하고, 나아가 당연시하던 모습이 연상된다. 진보당 지도부, 적어도 이번 사태를 주도한 당권파는 30년 전 운동권의 미몽(迷夢)에서 깨어나지 못한 듯하다.

 당권파 이정희 대표는 4일 대표단 총사퇴 요구를 거부했다.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대해 “부풀리기식 결론”이라고 반박했다. 경선과정을 총괄했던 중앙당 선거관리위원장도 조사 결과를 “침소봉대”라고 말했다. 부정에 책임지고 사퇴해야 할 당사자들이 부정을 고발한 조사 결과를 비난하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이 아닐 수 없다.

 부정을 저지르고도 이를 반성하지 못하고, 따라서 시정하지도 못하는 정당이라면 공당으로서 자격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정당이 자신을 대표해줄 것이라 기대하는 국민은 없다. 진보당을 지지했던 유권자들의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민노총마저 외면할 기세다. 일부에선 정당 해산 주장까지 나올 정도다. 극한 상황엔 극약처방이 필요하다. 진보당은 모든 것을 버려야 산다. 부정 당선된 비례대표와 당 지도부가 모두 물러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