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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관 선거’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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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부정의 종합판이다. 통합진보당이 3일 전격 공개한 4·11 총선 비례대표 부정경선 진상조사 보고서 내용이 그렇다. 당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조준호)가 작성한 이 보고서엔 현장·온라인 투표의 부정 실태가 낱낱이 드러났다.

 현장투표에선 선거관리자의 직인이 없는 투표용지가 발견되면 무효표로 처리돼야 하는데도 전국 12개 투표소에서 모두 유효표로 처리된 것으로 드러났다. 정해진 기표 도구 대신 볼펜·사인펜 등으로 ○나 V 표시를 한 무효표들도 유효표로 인정됐다. 선거인명부에 나온 사람과 실제 투표자가 다른 사례(예컨대 투표인은 ‘최병섭’인데 서명자는 ‘명신’)도 61개 투표소에서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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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더기 대리투표가 의심되는 사례도 있다. 12개 투표소에서 2~6장의 투표용지가 노란색 끈끈이에 접착돼 붙어 있는 상태로 발견된 것이다. 선거관리인이 투표자에게 투표용지를 한 장씩 교부하지 않고 뭉텅이로 줬다는 증거다. 보고서는 “누군가 (투표용지를 여러 장 갖고) 대리투표 했다”고 지적했다.

 전체 유효투표의 85% 이상을 차지한 온라인 투표(3만5000여 명)에선 같은 PC를 사용한 중복투표가 대거 이뤄졌다. 서울·인천·대구 등의 투표자 39명이 같은 PC에서 투표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투표인들이 한 장소에 모여 한 PC로 투표하기는 어려우므로, 조작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조사위는 같은 PC를 이용한 일괄 투표가 개별 PC를 통한 투표를 압도할 정도로 많았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대리투표와 공개투표가 벌어졌다는 정황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집계 과정에선 기권자가 417명인데도 269명으로 계산했고, 차이가 나는 148명은 각 후보자의 득표 수에 넣었다.

 윤종빈(정치학) 명지대 교수는 “독재정권 시절 관제 투표를 상징하는 ‘체육관 선거’도 이보다 나았을 것”이라며 “진보정당으로서 자격이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조사 결과를 놓고 당권파(범경기동부연합)는 선거 관리의 책임을 지고 이정희 대표의 단독 사퇴 선에서 막자는 입장이다. 반면 유시민·심상정 대표는 비례대표 당선인 전원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한편 통합진보당의 최대주주 중 하나인 민주노총은 “미봉책으로 수습하려 한다면 가장 강도 높은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원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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