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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불후의 명작' 피곤한 2류인생 그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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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도 어렴풋한 함중아의 '내게도 사랑이'가 잔잔히 울려퍼지는 순간, '불후의 명작'(23일 개봉)은 복고에 기댄 영화라는 것을 직감한다.

신인 심광진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 나오는 데보라의 테마곡 '아마폴라'와 반딧불이의 우아한 비행, 그리고 서커스단의 곡예 장면 등을 들려주고 보여줌으로써 잃어버린 것에 대한 기억을 들춰낸다.

빛 바랜 사진첩을 넘기는 듯한 느낌을 관객에게 선사하기 위해서다. 이같은 장치들은 실패한 인생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전하기 위한 장식품이다. 애틋한 사랑의 아스라함을 복고적인 감각을 통해 유발시키겠다는 감독의 의도이기도 하다.

명작을 만들겠다는 꿈을 가졌지만 경제적 사정 때문에 에로비디오를 만들어야 하는 인기(박중훈)와 사랑을 놓쳐버린 쓸쓸한 대필 작가 여경(송윤아).

삶이 피곤하기만 한 두 사람은 서로 만나 그들의 꿈을 담은 '날으는 인간폭탄'이란 시나리오를 만들기까지는 희망이 있어 행복했다.

그러나 인기는 그 작품을 맡지 못해 다시 에로비디오를 찍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고, 여경은 새로 다가온 사랑에 자꾸 주춤거린다. '희망'의 뒷면에는 항상 냉혹한 현실이 버티고 있다.

추억을 자극하고 이류 인생에게 은은한 시선을 보내는 이 영화엔 코믹적 요소도 있다. 애로물 '마님사정 볼 것 없다'를 만든 제작자 양사장(백윤식)이 야심작이라고 외치는 '박아사탕'의 절정 부분을 걸쭉하게 들려주는 대목이나 카메오로 나온 신현준을 만난 인기가 돈봉투에 사인을 받는 장면들. 술자리에 올려도 결코 썰렁하지 않을 만큼 재미있다.

그러나 멜로와 동화, 만화적 요소들이 서로 엉기면서 영화는 불협화음을 낸다. 좌절하고 사랑하고 고통받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영화 속에 깊이 박히지 못하고 겉도는 이유다.

또 영화 제작 중 가장 대규모 촬영이었다는 영화 속 서커스나 네 번이나 등장하는 바나나 우유 등 감독이 골라낸 추억의 소재들은 새로운 것으로 재창조됐다기보다는 단편적인 추억에 머물고 만다.

한국형 블록버스트 바람이 가라앉으며 '순애보'를 잇는 멜로물이 '불후의 명작'이다. 둘 다 시네마서비스가 제작에 관여하고 배급하는 영화. '순애보'는 세련된 도시적 감성과 이재용 감독 특유의 꼼꼼한 장치들이 곳곳에서 변주하는 영화로 전문가들로부터는 '참신하다'는 평을 들었다.

그러나 흥행 성적은 의외로 많이 떨어진다. 이에 비하면 '불후의 명작'은 좀 촌스럽다. 희망을 얘기하겠다는 감독의 고집이 노골적이다. 흔히 비평과 흥행은 따로 논다고들 얘기를 한다. 이 두 작품도 그럴지는 두고 볼 일이다.

■ Note

'인생은 아름다워' 에서 로베르토 베니니가 보여준 것처럼 박중훈도 코믹 끝에 묻어나는 피곤한 인생의 페이소스를 보여주려 했지만 자꾸 어긋난다.

"박중훈 옆에는 여자가 있으면 이상하게 꼬인다"는 영화 관계자의 말처럼 '인정사정 볼 것 없다' '투캅스'의 박중훈 보다 '꼬리치는 남자' '인연'에서 보였던 모습에 가까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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