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게인 2002년은 없어 … 새 시대엔 새 비전 보여줘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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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호 06면

노무현 정부 당시의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다. 그런데 청와대 실세였던 그가 지금은 광주시 서구의 구의원이다. 2010년 지방선거 때 풀뿌리 민주주의 육성이라는 노무현 정부의 유훈을 실천하겠다며 지방으로 내려가 기초의원 선거에 뛰어들었다. 스스로를 ‘노무현주의자’로 부를 정도다. 그런 그가 지난 4·11 총선에서 민주통합당이 보여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와 제주 해군기지 중단 주장에 우려를 표명했다. 오는 12월 대선에 대해선 예상과 달리 “어게인 2002년이란 없다. 새 시대엔 새로운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6일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다. 이 전 실장은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2002년은 벌써 10년 전인데 지금을 그 당시로 대입해선 안 된다”며 “노무현 정신이란 가치는 역사 속에 살아 있지만 2013년 체제는 새롭게 가는 거다. 노무현 체제가 재생되는 건 아니다”라고 밝혔다.

민주통합당 정책 걱정하는 ‘노무현주의자’ 이병완

-4·11 총선에서 민주통합당의 패배 이유는.
“역대 선거에서 반대론으로 승리한 예는 거의 없다. 2002년 지방선거 때 이명박 서울시장 후보가 청계천 복원을 들고 나오자 민주당 김민석 후보는 반대했다.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선은 오세훈 전 시장의 무상급식 반대라는 연장선 속에서 치러졌다. 반대한 쪽이 모두 졌다. 이번엔 민주통합당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를 먼저 내놨다. 제주 해군기지 중단 요구도 그렇다. 그때부터 이쪽 스피커들이 버벅댔다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보니 ‘이번엔 투표해야지’ 하는 초반 의식들이 FTA 등으로 넘어가면서 반감됐다.”

-한·미 FTA와 제주 해군기지는 모두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됐다.
“나는 아직도 FTA에 대해 긍정적 생각을 갖고 있고 (재직 당시) 여론 선도에도 앞장섰던 사람이다. 해군기지도 그렇다. 모두 찬성한다. 이 두 사안은 모두 국가의 100년 대계다. 깊이 토론하고 충분히 공감할 논의 구조를 만드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 천성산 터널을 보자. 노무현 정부는 6개월에 걸쳐 반대론자들을 설득하고 (도롱뇽 등 생태계를 해치는지) 검증했는데 이를 놓고 비효율적이란 비판이 나왔다. 하지만 민주주의에선 처리 과정이 중요하다. (이명박 정부에서) 임기 중 해야 한다며 강행하는 것도 적절치 않지만, (민주통합당에서) 반대가 있으니 두부 자르듯이 ‘안 돼’라고 하는 것도 아니었다. 솔직히 야권에서 FTA 폐기 얘기부터 나와서 깜짝 놀랐다.”

-야권연대를 어떻게 보나. 통합진보당 강령엔 주한미군 철수, 한·미동맹 해체도 포함됐다.
“발전된 유럽 민주주의에선 연대·연정이 수시로 이뤄진다. 우리도 민주주의가 성숙하면 그렇게 갈 수 있다. 그런데 연대는 당이 다르고 정체성의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전제하에서 연대다. 정체성은 보호되고 서로 이를 존중해 주는 거다. 다 똑같으면 합쳐야지 왜 연대하나. 연대했으니 통합진보당이 (주한미군 철수하자고) 하는 것까지 따라가면 그건 연대가 아니다. 서로 간에 분명한 차이가 있는데 모호하게 가도 역시 정도는 아니다.”

-노무현 정부도 일각에선 ‘좌파’로 비판받지 않나.
“그건 진보·보수의 시각보다 주류 대 비주류로 보는 게 옳다. 노무현 정부는 우리 사회의 비주류 세력이 처음으로 정권을 담당한 것이다. 그래서 지역·계층·성·학벌 등에서 비주류 인사들이 대거 참여했다. 하지만 보수가 다수인 주류로선 인정하기 싫은 대통령이었다. 노무현 정부가 불통·독선이었다는 비판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우리 정치사에 모든 정권은 소통 부재란 비판을 받았다. 좌파 정권, 불통 정권 모두 주류가 인정하기 싫다는 점에서 나온 주장이다.”

-문재인 당선인은 ‘이미 탈노무현은 돼 있다’고 밝힌 적이 있는데.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탈박정희’하겠다고 하면 누가 믿겠나. 물론 문 당선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동업자 관계였지만 박근혜 위원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혈육이란 점에서 차이는 있다. 하지만 문 당선인이 탈노 한다고 해서 정서적으로 받아들여지겠나. 탈노니 아니니 해석해봐야 의미 없다.”

-지금 친노 진영이 대선 승리를 위해 필요한 건 뭔가.
“역대 대선에서 ‘정권 심판론’은 없었다. 대선은 유권자들이 향후 5년을 고민하면서 미래에 대해 투자를 하는 거다. 무엇을 제시하는가, 그런 비전이 신뢰를 얻는가의 경쟁이다.”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의미인가.
“모든 정권이 그랬지만 다음 정권도 숨 돌릴 틈 없는 커다란 내외의 파고에 휩쓸릴 거다. 경제 문제, 대외 문제 무엇 하나 만만한 게 없다. 가슴 아픈 예가 한 가지 있다. 지방에서 살다 보니 곳곳이 3대 백수다. 노부모를 모신 아버지는 퇴직했고 자식은 취업이 안 된다. 이게 도대체 뭔가. 10년 전과 비교하면 내외 상황과 유권자가 달라졌다. 전혀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10년 전 친노는 비주류였는데 지금도 비주류인가. 2002년 노무현 정부가 이렇게 했으니 그대로 가야 한다는 것은 맞지 않는다. 노무현 정부에서 했어야 할 일들은 그때 다 했다. 지금은 새 시대에 맞춰 내외의 도전을 극복하고 개척하는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친노 주자건 누구건 다 같다. 노무현 정신이 살아 있으니 친노 진영이 부활했다. 그렇다고 친노 주자가 집권해도 2013년부터 노무현 체제가 부활하는 건 아니다. 새롭게 가는 거다. 우리 지지층이 친노라고 해서 표를 주는 게 아니다.”

-어떤 비전을 꿈꾸나.
“국민에게 미래를 보여주고 선택받으려면 결국은 리더십이다. 내 생각엔 국토 발전의 균형, 인재 등용의 균형, 성장과 복지의 균형 발전이다. 성장과 복지 중 어느 한쪽만으론 절대 갈 수 없다. 결국 통합의 리더십이다.”

-친노가 야권 주류로 확고하게 자리잡자 ‘친노 독점론’ ‘호남 소외론’이 나왔다.
“민주통합당 지도부는 투표로 선출되지 않았나. 그런데 어떻게 독식인가. 또 호남 정치 지도자들은 소외를 말하기 전에 왜 호남에선 97년 이후 15년간 인물이 나오지 않았는지를 고민하고 성찰해야 한다. 우리 정치의 1번지였던 광주에선 ‘ 차기 대선에도 대권 후보가 안 보인다’는 자괴감이 나온다. 정말 중요한 건 독점 구조다. 광주와 대구에선 깃발만 꽂으면 되니 경쟁도 없고, 도전도 없었다. 왜 PK(부산·경남)에 우리 쪽 후보들이 몰려 있나. 광주·전남처럼 일방적 독점주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공과 중 극복할 점을 거론한다면.
“이명박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의 철학·가치를 공유하고 실천하는 이들이 모인 권력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 현 정부가 이해집단이라면 노무현 정부는 의식과 가치의 결합체인 의식집단으로 볼 수 있다. 대신 노무현 정부에선 자기 확신을 전 국민을 대상으로 객관화하는 노력에서 맹점이 있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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