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노자를 웃긴 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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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자(老子) 를 웃긴 남자(男子)
-이경숙 지음,자인,9천8백원.

도올 김용옥이 임자를 만났다.

EBS 텔레비전 강의로 화제를 모았던 도올의 '노자와 21세기' 에 대해 한 여성이 도발적인 비판을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책 제목의 '노자를 웃긴 남자' 란 도올을 겨냥한 것이다.

도덕경 1장에서 10장까지 번역 해설하고 있는 이 책은 다소 거칠은 비난과 점잖치 못한 표현을 제외한다면, 기존 도올 비판서와의 분명한 차별성을 인정할 만하다.

저자도 인정하듯이 노자의 도덕경을 대중화시킨 도올은 그녀가 염두에 둔 프로젝트에 포획된 디딤돌이다.선입관을 배제하고 볼 때 곳곳에서 통찰력과 상상력이 돋보이는 이 책은 도덕경 2천5백년의 해석사를 뒤집어버리려는 원력(願力) 의 시도라는 점에서도 각별한 주목거리다.저자가 보는 도덕경은 한마디로 정치사상서이다.

사계의 정설일 수도 있는 정치사상서라는 해석이 흥미로운 것은 이 관점을 도덕경 전체에 관철시키려는 철저함이다.같은 장 내에서도 단락마다 논리적 일관성을 결여한 모호한 번역과 억지로 끼워맞추는 해설들이 그동안 많은 연구자들을 괴롭혀온 것이 사실이었다.

저자가 볼 때 이 점에서 도올도,그리고 도올이 존경하는 위진시대 천재사상가 왕필도 예외가 아니다.

또 한가지,저자가 볼 때 도덕경에 난데없이 튀어나오는 글자는 단 한 자도 없다.철저히 성인(聖人) 의 정치행위라는 맥락에서 일관성있게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영백(營魄) 은 국민의 넋 혹은 마음 다시말해 민심(民心) 을 뜻한다.민심을 하나로 모으는 것 이것이 치국(治國) 의 요체라는 것이다.전기치유(專氣致柔) 란 백성들의 기운을 부드럽게 만든다는 뜻이다.

2장에서 ‘위(爲) ’자를 일관되게 ‘(거짓으로) 꾸미다’로 해석한 점도 돋보인다.저자가 볼 때 도덕경을 푸는 열쇠는 ‘위(爲) ’라는 한 글자다.

위자를 ‘되다’‘행하다’ 등으로 편리한 대로 갖다 풀이해선 안된다.위(爲) 자를 위(僞) 자로 푸는 기존의 해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이 책의 특징은 논리적 맥락을 철저히 관철시켜 나간다는 점이다.

도덕경의 1장을 결론 혹은 총론으로 본 기존의 해석과 달리 도(道) 라는 이름에 대한 설명을 하는 서론에 해당하며 중심어휘도 명(名) 이라고 주장하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언뜻 시시콜콜한 자구해석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도올의 텔레비젼 강의에 계몽된 독자라면 그 번뜩이는 기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 먼저 해결해야할 과제가 있다.
그것은 저자에 대한 궁금증이다.

저자 이경숙(41) 에 대해선 인터넷 천리안에서 Clouds(구름) 이란 ID로 인기를 끌었다는 것 이외에 정보가 없다.

이번 신간도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으다 출판인의 눈에 띄어 출간하게 된 것이다.
출판사측도 그녀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계약서를 작성했다고 한다.

책속에서 저자는 이러한 점을 의식하고 "누구의 해석이 더 옳고 설득력이 있느냐 하는 것은 책 자체를 놓고 판단해야지 학벌의 권위로 판단해선 안된다" 고 말한다.

저자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도올의 도덕경 텔레비젼 강의를 보고 도저히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컴퓨터 통신에 재미있게 글을 띄우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출판과정에 추천해 주신 분들이 그냥 통신 글 그대로 나가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일부 거친 글도 수정하지 않았다. " 고 말했다.

아무리 학문의 세계는 실력으로 평가되어야 한다지만, 책 속에서 보이는 과감한 비난과 조롱 뒤에 자신을 철저히 숨기는 소극성은 책의 빛나는 통찰과 상상력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도 있으며, 자칫 '도올을 웃긴 여자' 로 전락될 위험도 없지 않다.

자유로운 고전 해석의 열린 장에서 두 사람이 펼칠 멋진 무대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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