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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전세 살면서 돈 벌었다" 이주비의 유혹과 함정

조인스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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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은기자] 전세로 살기만 했을 뿐인데 3년만에 2000만원이나 벌었다구요? 우연한 기회에 전셋집으로 재테크(?)를 하게 된 A씨의 사연이다.

없는 형편에 신혼집을 찾느라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A씨는 4년 전, 서울의 한 낡은 주택 밀집가에 터를 잡게 됐다. A씨가 고른 집은 단독주택 옥탑방으로 가격이 저렴한 데다 집 상태도 양호해 그의 마음에 쏙 들었다.

방 2개에 널찍한 거실, 화장실을 갖추고 관리도 제법 잘 돼 있었다. 게다가 옥상이 넓어 거실 창을 열면 탁 트인 마당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 더욱 좋았다. 당시 전셋값은 6000만원. 돈 없는 신혼부부에게 옥탑방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안식처가 돼줬다.

“4년 만에 2000만원 벌었어요”

이들이 입주를 한 지 반년 가량 흐른 어느 날 재개발이 된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것도 뉴타운으로 말이다.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지만 전셋값은 크게 오르지 않았다. 원래도 낡은 집들이 많아 세입자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던 데다 곧 개발을 한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재개발 사업이 지지부진한 대부분의 구역들과는 달리 사업속도가 빨랐다. 구역지정부터 관리처분인가까지 걸린 시간은 3년이 채 안 됐다.

A씨는 그 집에서 4년 가까이 살았다. 거주 기간 중간에 전세 계약 갱신을 해야 했지만 집주인은 보증금을 올리지 않았다. 그 사이 자녀가 태어나면서 식구는 4명으로 늘었다.

A씨 가족이 이 집을 나올 때 손에 쥔 돈은 8000만원 가량이었다. 보증금에 이주비를 더한 것이었다. 재개발 이주비는 도시근로자 월평균소득으로 4개월 치를 주게끔 돼 있다.

A씨는 4인 가족으로 지난해 4인 가구의 도시근로자 월평균소득이 472만원을 기준으로 하면 1900만원 가량이 된다.

그는 "단순히 이사비용 정도가 나오는 줄 알았는데, 우리 같은 서민에겐 정말 큰 돈이다"고 말했다. A씨는 또 다른 전셋집을 구해 나갔지만 현재 서울시의 장기전세주택(시프트)에 당첨되길 기다리고 있다.

단순히 공짜로 번 1900만원만을 생각하면 A씨의 사례는 성공적이라고 할 만하다. 그런데 사실 재개발 지역의 세입자가 이주비를 받으려면 이런 저런 조건들이 붙는다. 또 이를 악용하는 집주인도 적지 않다.

재개발 세입자 이주비는 원래 구역 지정을 위한 주민 공람을 진행하기 3개월 전부터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세입자들을 대상으로 한다. 즉 A씨처럼 재개발이 될 지, 안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들어갔다가 로또를 맞는 식이다. 이주비를 노리고 위장전입을 하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서 해놓은 장치다.

어찌됐든 재개발 세입자 이주비 때문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세입자 이주비 지급 기준일을 구역 지정 공람 공고일 이전 3개월이 맞는 것인지(도정법), 이주비를 지급하는 것의 근간이 되는 공익사업법에 따라 사업시행인가일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것인지 법원조차 엇갈리는 해석들을 내놨었다.

이주비 노리고 무조건 간다? "위험 천만"

이주비를 지급하는 주체가 조합에서 집주인 혹은 건물주로 바뀌면서 혼란도 있었다. 일부 집주인들이 이주비를 주지 않기 위해 악의적으로 세입자들을 길거리로 내모는 상황도 곳곳에서 터졌다.

이주비를 받기 위해선 구역지정 공람 공고일 3개월 이전부터 보상이 나올 때까지 거주해야만 하는데, 하루라도 재개발 구역 밖으로 이사했을 경우에는 보상을 받을 수 없어서다. 집주인들이 개별적으로 세입자 이주비를 주도록 방침을 정한 일부 사업지에선 집주인들이 이 점을 악용해 임대계약을 해지하는 등의 문제가 생기기도 했었다.

한 재개발 전문가는 수천만원의 이주비를 노리고 재개발 지역에 세입자로 들어가는 것은 이러한 문제들 때문에 위험하다고 조언한다.

이주비를 조합비로 충당한다면 상관 없겠지만 현재 조합비로 충당하거나, 혹은 건물주가 세입자 이주비를 줄 수 있도록 병행되기 때문에 어떠한 방식이 채택되느냐에 따라 세입자의 운명이 갈릴 수 있어서다.

“현재는 세입자 이주대책 수립 기준일을 재개발은 정비구역 지정을 위한 공람공고일 3개월 이전부터 사업시행인가까지 영속적인 거주자로 하고 있다.

그런데 서울시가 최근 조례 개정을 통해 사업시행인가일부터 이주때까지 거주하는 사람으로 확대하기로 함에 따라 앞으로 개정된 조례가 시행되면 이주비를 둘러싼 분쟁은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1000만원 이상의 이주비는 세입자 입장에서도 적지 않은 돈이지만 재개발 지역에 세입자로 들어간다는 것에는 분명히 리스크가 있어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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