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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은 빛나지 않는다, 고성능 차의 은은한 존재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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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면

광택이 없는 `영건` 컬러 옵션을 적용한 현대차 벨로스터 터보. 무광 페인트는 고성능을 암시한다.

현대차는 지난 4일 선보인 벨로스터 터보에 ‘영건’이란 차체 컬러 옵션을 마련했다. 20만원을 더 내고 고를 수 있는 옵션이다. ‘영건’은 진회색을 띤다. 그런데 광택이 전혀 없다. 이른바 ‘무광(無光) 마감’이다. 영어로는 ‘매트 피니시(Matte Finish)’라고 부른다. 군용차나 탱크의 윤기 없이 뽀얀 표면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무광 마감’이 최근 자동차 컬러의 새로운 유행으로 주목받고 있다. ‘무광 마감’은 몇 년 전 등장했다. 주위의 시선을 끌어야 하는 차가 먼저 도입했다. 모터쇼 무대 위의 컨셉트카가 대표적이다. 처음엔 휠이나 스포일러(날개) 등 특정 부위에 제한적으로 썼다. 그러나 이젠 차체 전체를 광택 없는 컬러로 덧씌우는 게 대세다.

자동차와 ‘무광 마감’의 만남을 가장 적극적으로 주선한 건 튜너(개조업체)다. 튜너에 ‘무광 페인트’는 고성능을 암시하고 희소성과 개성을 강조하는 수단으로 인기다. 독일 튜너 만소리는 롤스로이스 팬텀을 무광 검정 컬러로 칠해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포르셰 튜너 겜발라는 취급하는 전 차종을 무광 페인트로 칠해 관심을 독차지했다.

이제 ‘무광 마감’의 유행은 완성차 업체로까지 번지고 있다. GM·폴크스바겐·람보르기니·아우디 등 다양한 브랜드가 무광 페인트로 단장한 차를 주요 모터쇼에 출품하고 있다. AP 통신에 따르면 듀폰 오토모티브의 마케팅 매니저 카엔 서니카는 “한정판 차종을 중심으로 ‘무광 페인트’를 원하는 소비자가 늘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GM은 지난 2008년 북미모터쇼에서 ‘무광 마감’을 한 허머 HX와 쉐보레 그루브 컨셉트를 선보였다. 이 자리에서 GM 글로벌 디자인 부사장 에드 웰번은 “현재 거의 모든 자동차 메이커가 ‘무광 마감’을 진지하게 연구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차체 표면의 광택을 없애면 주위의 사물이 전혀 비치지 않는다. 따라서 본래의 조형미가 오롯이 도드라진다”고 설명했다.

주로 젊은 층이 ‘무광 마감’ 유행을 이끌고 있다. 광택 없이 깔끔한 표면을 갖춘 휴대전화와 노트북·카메라를 고급스러운 제품으로 인식하면서 자동차 역시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그러나 아직까지 ‘무광 마감’을 한 자동차는 소수에 머문다.

기술적 문제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처리 과정도 복잡하지 않고 비용도 그리 많이 들지 않는다. 다만 관리가 까다로운 편이다. 기본 도색 위에 덧칠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찰이 잦은 부위엔 부분적으로 광택이 되살아날 수 있다. 2008년 당시 GM의 에드 웰번은 “세차할 때마다 특수막이 벗겨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몇 년 사이 이 같은 단점은 거의 개선됐다. 볼보의 디자인 수석 부사장 피터 호버리는 “최근 ‘무광 마감’ 관련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해 안심해도 좋다”고 말한다. 듀폰 역시 “벗겨질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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