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국토지주택공사, 원가절감·구조조정 …‘이지송 개혁’으로 빚더미 대탈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2면

부채에 시달리던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몸집이 한결 가벼워졌다. 올 1분기에만 1조4000억원 규모의 채권을 조기상환하는 등 모두 7조원에 달하는 원리금을 상환했다. 올 1분기를 결산한 결과 토지·주택 판매대금 회수액은 3조5600억원으로 지난해 동기와 비교해 34% 늘어났고 채권발행에 잇따라 성공했기 때문이다.

 LH가 1분기 채권발행 등으로 조달한 외부자금은 모두 6조2000억원. 지난해 동기와 비교해 253% 많은 금액이다. 눈길을 끄는 건 이중 10년 이상 장기채가 절반 가까운 2조3000억원에 달한다는 점이다. 장기채는 회사에 대한 중장기 신뢰가 없으면 발행이 불가능한 것이다. 투자자들의 신뢰가 그만큼 회복됐다는 해석이 잇따랐다.

 2009년 10월 출범 직후 한치 앞도 보이지 않던 LH 경영 정상화의 모습이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급증하던 부채증가 속도는 꺾였고, 토지주택 판매대금 회수액은 늘어난다. 부채 상환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LH는 지난 4월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교육원에서 2012년도 기업설명회를 개최했다. 연기금·자산운용사·투신사 등 주요 채권 투자기관뿐 아니라 채권평가사·신용평가사·애널리스트 등 약 150여명이 참석했다.

 ◆암울한 출발=2009년 10월 출범초기 LH 재무상황은 심각했다. 당시 자산 130조원, 부채 109조원, 금융부채 75조원이었다. 금융부채비율은 자본금 21조원 대비 361%에 육박했다. 심각한 것은 부채 증가 속도였다. 2005년 55조원이던 부채는 2009년 75조원으로 늘어있었다. 하루 평균 190억원씩 부채가 쌓였다. 안진회계법인은 당시 LH 부채는 2011년 110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당시 재무역량을 넘어서는 사업이 너무 많았다. 대규모 국민임대 주택 건설, 세종시, 혁신도시 개발 등의 과도한 국책사업을 한꺼번에 수행하고 있었고 지자체의 각종 기반시설 설치 요구 등을 감당해야 했다. 개발 사업은 평균 투자기간만 7년, 회수기간은 12년이 소요된다. 토지보상 비용 등 각종 비용은 초기에 한꺼번에 들어가지만 모두 회수하기 위해선 20년을 기다려야 하는 사업구조다. 게다가 당시 미국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인해 국내외 부동산 시장은 꽁꽁 얼어 있었다. 침체된 부동산 시장은 LH의 경영 전망을 더 불투명하게 했다.

 ◆대대적인 개혁=초대사장으로 취임한 이지송 사장은 경영 전반에 걸친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했다.

 우선 내부 조직 문화를 바꿨다. 민간전문가로 구성된 재무개선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재무개선 100대 과제를 마련했고 노사공동 비상경영을 선포했다. 이에 따라 대대적인 토지 판매 활동을 벌이고, 원가 10% 절감 노력을 펼치는 등 강도 높은 자구노력을 진행했다. 임직원은 모두 임금 10%를 반납했고 1035명의 인력을 구조조정했다. 1,2급 직원의 75%는 물갈이됐다.

 청렴도를 높여 도덕성을 확보하는데 노력했다. 직무와 관련해 단 10만원만 받아도 즉시 퇴출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했고 간부직원의 청렴도를 평가했다. LH 청렴기획단을 발족하기도 했다. 특히 각종 비리와 민원의 온상이 됐던 입찰심사제를 투명하게 바꿨다. 심사의 모든 과정을 CCTV로 촬영해 공개했고 최저가 심사를 객관적으로 할 수 있도록 틀도 마련했다.

 방대하게 벌여온 사업을 정리하는 작업도 적극 진행했다. 이 사장은 출범 후 전체 414개, 425조원에 달하는 사업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해당지역 주민과 지자체와 대화를 통해 사업을 축소하거나 혹은 취소했다.

 현재 몇몇 지구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업 조정이 마무리되고 있는 상태다. LH측에 따르면 신규사업 138개 지구를 포함한 사업조정이 완료되면 70조원 내외의 사업비가 줄어들 전망이다. LH 관계자는 “사업 착수 시기 조정 등을 통한 사업비 이연효과 등을 고려하면 모두 110조원 내외의 사업조정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업 정상화 본궤도=경영 혁신은 조금씩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 지난해 LH의 매출은 전년보다 16% 늘어난 15조원으로 전체 공기업 중 세 번째로 많았고 당기순이익은 55% 증가한 7900억원으로 공기업 중 가장 높았다.

 연간 20조원 가까이 급증하던 부채는 증가폭이 크게 줄어 지난해는 6조원 수준으로 감소했다. 2009년 10월 통합 당시 525%에 이르던 부채비율은 지난해 468%로, 금융 부채비율은 361%에서 350%로 각각 57%, 10% 줄었다.

 올 들어서도 경영 상황은 지속적으로 호전되고 있다. 올 들어 3개월간 총 14조5000억원을 토지주택 판매와 채권발행 등을 통해 조달했고 사업투자와 부채 감축에 모두 13조7000억원을 지출했다. 1분기에만 8000억원 자금 수지 흑자를 기록하며 자금 순환이 원활해졌다.

 LH 관계자는 “올해 들어 매주 평균 1조원이 나가고 1조1000억원이 들어오는 등 선순환 구조가 생겼다 ”고 말했다.

  박일한 기자

매주 1조원 자금 선순환 구조

LH 이지송 사장(오른쪽에서 두번째)이 부산의 한 공사현장을 방문해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LH는 자산 158조원 규모의 국내 최대 공기업이다. 한해 투자규모만 25조~30조원으로 공기업 전체 투자액의 절반에 해당한다. 올해 공사 발주물량인 14조원은 공공부문 총 발주물량(38조원)의 40%에 해당한다.

 LH는 2009년 10월 대한주택공사와 한국토지공사가 합병해 태어났다. 주택공급·도시개발 등 기능이 중복되고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합병을 하자 ‘거대 부실공룡’이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자본금은 21조원인데 금융부채만 75조원이 넘었다. 수도권 신도시, 지방 산업 단지 등 전국에서 벌인 각종 개발사업과 124만가구의 임대주택 공급을 진행하면서 생긴 부채였다.

 하지만 출범 이후 2년 6개월이 지난 지금 LH는 빠르게 체력을 회복했다. 출범 3년 차인 올해는 매주 평균 1조원 규모의 대규모 자금이 선순환하는 경영구조를 만들었다.

 이런 빠른 회복은 “사명 빼고 다 바꾼다”고 선언한 이지송 사장의 리더십과 임금 삭감까지 감내하고 내부 구조조정에 임한 임직원의 노력에 따른 것이다.

 LH는 내부개혁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에 기여하는 공기업의 역할을 꾸준히 확대했다. 특히 자금 순환에 숨통이 트인 올해엔 실버사원을 2000명 채용했고 대졸사원 300명, 고졸사원 200명을 채용했다. 공사 발주 규모를 지난해 11조9000억원에서 올해 14조원으로 늘려 지역경제에 기여했다고 자부하고 있다. 또 전세난에 따른 서민주거안정을 위해 다가구 전세를 지난해 1만7000여가구에서 올해 2만7000여가구로 늘리기로 했다.

 LH는 앞으로 지속적인 매출증가 등으로 재무상태를 개선해 2014년부터 사업수지를 흑자로 전환하고 2016년부터 금융부채가 감소세로 전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지송 사장은 “출범 후 지금까지 3년간은 LH 역사를 새롭게 개척한 자랑스러운 기간이 됐다”며 “경영 정상화를 반드시 성취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