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유망주 타자와 선구안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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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그에 관한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베이스볼 아메리카는 '1999년 올해의 팜(farm)'으로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이하 에이스 A's)의 마이너리그 조직을 선정하였다. 이런 결과는 이미 팜에서 배출해낸 뛰어난 타자들과 투수들로 지구 우승권에 근접해 있던 에이스였기에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에이스의 팜이 좋은 평가를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젊은 선수들이 당장 좋은 성적을 거두는 데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뛰어난 메이저리거로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을 만들어 준다는 데에 있다.

현재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운영 이사이기도 한 샌디 앨더슨은 에이스의 단장으로 취임한 이후, 장타를 치고 볼넷을 골라낼 수 있는 타자를 육성하는 데에 초점을 기울였다.

OPS(장타율과 출루율의 합으로 베이스를 얻어내는 능력을 보여줌)의 신봉자이기도 한 앨더슨의 이러한 노력은 결국 에이스의 팜을 젊은 타자들을 가장 잘 키워내는 곳으로 만들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선구안을 키워주는 데에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한가지는 스트라이크 존 판정 능력을 키워주는 방법이고, 또 한가지는 타석에서의 인내심을 키워주는 방법이다.

스트라이크 존 판정 능력은 쉽게 말해서, 타자가 얼마나 볼과 스트라이크를 잘 구분해 내는가를 얘기하는 것이다. 타자들이 기록하는 대부분의 안타는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오는 볼을 공략해서 얻어내는 것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는 타자들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능력이다.

만일 젊은 타자들이 볼과 스트라이크를 잘 구분해낼 수 있다면, 그 선수는 상위 리그에 올라가게 되더라도 경험 많은 투수들의 유인구에 쉽게 속지 않게 될 것이다.

스트라이크 존 판정 능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수치는 바로 볼넷과 삼진의 비율이다.

볼넷과 삼진의 비율이 1:1 에 가까울수록 그 선수는 볼과 스트라이크를 잘 구분하고 있는 것이며, 볼넷이 삼진보다 크다면 그 선수는 볼과 스트라이크를 완벽하게 구분해 내는 선수라는 증거이다.

지금은 에이스의 주전 3루수로 자리 잡은 에릭 차베스는 97년까지만 하더라도 수준급의 유망주는 될지 몰라도 특급 유망주라고 보기는 힘든 선수였다. 그리고 이 해에 에릭 차베스의 볼넷/삼진 비율은 37/91 로 거의 3배에 가까울 정도로 삼진이 많았다.

하지만 에이스의 팜은 차베스에게 꾸준히 볼과 스트라이크를 구별할 것을 주문하였고, 차베스는 이듬해인 98년, 볼넷과 삼진의 비율을 54/93 으로 끌어 올리면서 전년도보다 무려 56포인트나 오른 타율(.271에서 .327)과 두배에 가까운 홈런(18개에서 33개)을 기록하게 되었다.

차베스가 수준급의 유망주에서 리그를 대표하는 최고의 유망주로 떠오르게 된건 말할 나위 없다.

이것은 결국 타자에게 있어서 볼과 스트라이크를 구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예이다. 에이스의 팜은 특히 젊은 타자들에게 스트라이크 존 판정 능력을 잘 키워주는 곳이기 때문에 항상 좋은 타자들이 배출된다.

선구안을 향상 시키는 또 다른 방법은 타석에서 인내심을 키워주는 것이다.

종종 많은 사람들이 볼과 스트라이크를 잘 구분하는 것과 볼넷을 얻어내는 능력을 혼동하고는 하는데, 이 두가지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 토니 그윈은 그 어떤 선수보다 볼과 스트라이크를 잘 구분해 내는 선수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윈은 매해 빅리그에서 가장 적은 삼진을 당하는 선수이기도 했다. 결코 유인구에 속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윈은 많은 볼넷을 얻어내는 선수는 아니다. 한시즌에 평균 40개 내외의 볼넷을 얻어낼 뿐이다.

이는 두가지 능력이 전혀 별개의 것임을 얘기해 주는 예이다. 볼넷을 많이 얻기 위해서는 볼과 스트라이크를 잘 구분하기도 해야 하지만, 동시에 뛰어난 인내심을 가지고 있어야 가능하다는 얘기다.

인내심이 부족한 선수라면 뛰어난 스트라이크 존 판정 능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볼에는 바로 방망이가 나가기 때문에 많은 볼넷을 얻어낼 수 없다.

그런데, 이 능력은 종종 마이너리그의 유망주 타자들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메이저리거라면 타석에서의 인내심은 타자 자체를 평가할 수 있는 항목은 되지 못한다. 그윈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볼과 스트라이크를 잘 구분해 낼 수만 있다면 볼넷을 많이 얻지 못하더라도 뛰어난 성적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망주 타자들에게는 이 타석에서의 인내심이 얼마나 뛰어나냐가 곧바로 메이저리그에서 대성할 수 있냐 없냐로 연결될 수 있는 문제이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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