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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겨울 콘서트

중앙일보

입력

1989년이었으니까 벌써 11년 전 일이다.

대학로 동숭아트센터는 일찌감치 젊은이들로 가득 찼고 우리는 빨간 양탄자가 깔린 좁은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공연을 봐야했다.

그녀는 한 여자대학의 기숙사에 살고 있었다. 왜 시간은 그리도 빨리 가던지. 밤 10시는 절대 넘겨서는 안되는 통금 시간이었다.

김광석도 김창기도 함께 했던 젊은날의 그룹 동물원이 멋진 목소리로 '변해가네' 를 부르는 데 우리는 아쉬워 자꾸 뒤를 돌아보며 공연장을 나와야 했다.

비가 오고 있었다. 우산을 사러 빗속으로 뛰어가는 모습을 보고 '아, 괜찮은 남자구나' 라고 생각했다고 한참 뒤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시간은 흘렀고 이런저런 곡절을 지나 우리는 지금 함께 산다. 사노라면 때론 속상하고 때론 그녀가 미운 일이 왜 없을까. 그럴 때면 언제나 그 밤을 생각한다.

김광석은 죽었다. 그녀와 함께 했던 많은 기억도 일상에 묻혀 버렸다. 그렇지만 그 밤, 그 비, 그 노래들은 아직도 생생하고, 살아가는데 힘이 된다.

춥다. 겨울인데, 매일 매일 즐겁지 않은 소식들만 들려온다. 누가 우리를 위로 좀 해줬으면 좋겠다. 양희은.봄여름가을겨울.들국화가 해줄까. 혹은 DJ.DOC가. 아니면 김장훈이….

올 겨울엔 11년만에 그녀와 다시 동물원을 만나러 가야겠다. 그 밤도 비가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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