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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책의 흐름] 한국인 무엇을 생각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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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 우린 무슨 책을 보았고,무슨 생각을 하며 한 해를 보내고 있는 것일까. 떠들썩했던 밀레니엄의 첫해가 저무는 지금 독서시장과 지식 대중의 마음자리를 가늠하려는 이유는 자명하다.타 부문에 비해 ‘점차 작아지는 책’에 대한 우려도 없지 않지만, 책은 의연히 정보와 생각이 전달되는 매체로 남아있다.

불황 속의 불황라는 체감 속에 ‘인문서의 죽음’까지 거론됐지만, 올 한해 막상 전체 단행본의 매출액은 줄지 않았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내년초 정확한 집계를 기다려야 하겠지만, 매출액은 외려 지난 해에 비해 5% 신장이 점쳐진다.당혹해할 일도 아니다. 독자들 입맛이 그만큼 다양해졌음을 알리는 징후이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 한파가 시작된 98,99년이후 처음으로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해리 포터’시리즈,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 ‘가시고기’등 4개의 책은‘동반 밀리언셀러 등극’이 예상된다는 점도 괄목할 만하다.

어쨌거나 물리적 판매량과 상관없이 한국인들은 이런 텍스트들을 훑으면서 기왕의 자기 생각을 새롭게 점검했음이 분명하다. 그러면 우리 사회 저변의 심리와 사유는 어느 방향으로 물꼬를 틀었는가.

지난 10년 대중사회 진입의 연장선에 서 있으면서도 또 다른 풍광을 연출했던 ‘2000년 독서행위’를 일별하자면, 평균적인 한국인의 마음은 일단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에서 엿볼 수 있다.

로버트 기요사키의 이 책은 풀리려나 했던 경제 한파가 강풍으로 되돌아온 올해 한국인들에게 자신의 경제적 삶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을 깊숙하게 각인시켰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에 대한 역설적인 규정으로 가득한 이 책은 돈에 대한 기왕의 관점을 바꾸라고 설득을 한다.3∼4년전 만해도 ‘돈에 눈이 멀었나?’하는 지적을 받을만했던 책이다.

따라서 물신(物神) 숭배의 인정을 부추긴 ‘발가벗은 자본주의 논리’라기보다는 부(富) 와 돈의 가치에 대한 기왕의 이중잣대가 필요한가 하는 점을 묻게 했다는 평가가 설득력이 높다. 이 책이 미국을 비롯한 지구촌 책 시장의 동시 베스트셀러라는 점도 흥미롭다.

2000년 지식대중의 어수선한 마음의 또 한자락은 정통소설 작가들의 신작을 제치고 사랑을 받은 ‘가시고기’와 ‘국화꽃 향기’에서도 보여진다.

한국인들은 왜 이 책을 집어들었을까? 정통문학이 시들해진 공백을 대신한 임시 카드일까? 글쎄다.대중들은 지적(知的) 긴장감을 요구하는 고전적 품격의 문학 대신 눈물어린 시정 이야기에 눈과 귀를 열어 감정이입을 겸험했다고 봐야 한다.

즉 그들은 통속적 멜로에 기대어 경쟁과 속도의 시대의 시대를 버티며,가족의 가치를 점검한 셈이다.물론 보수적 이데올로기 회귀현상 임이 분명하다.

그러면 한국인들은 ‘퇴행(退行) 적 책읽기’만을 했을까? 그런 판단은 엘리티즘 시각의 허무주의에 불과하다. 대중들은 인문학적 관심의 끈을 아주 놓아버리지 않았다.

진부하다는 지적을 받을 만을 만큼의 재래식 서사(敍事) 체계 속에 팬터지 요소를 풍부하게 집어넣은 조엔 롤링의 ‘해리 포터’시리즈에 대한 관심의 경우 시대적 징후로 읽힌다.즉 올해 대중들은 ‘재래식 포장(서사체계) 속의 팬터지(마법) ’를 소화하면서 도래한 사이버 세계에 대한 심리적 준비를 한 셈이다.

‘노자와 21세기’‘도올 논어1’등 히트작을 낸 동양철학자 김용옥, ‘그림으로 보는 신화’시리즈등으로 유명해진 소설가이자 신화연구가 이윤기의 책에 대한 반향도 같은 맥락이다.

두 사람이 내공을 가진 ‘히트상품 저자’인 것도 분명하지만,동시에 인문서의 생산과 유통도 바로 그런 ‘친절한, 재미있는 포장’을 곁들여야 한다는 점을 보여줬다. 대중은 이제 가공되지 않은 날 것을 씹기 보다는 ‘엔터테인먼트화된 정보’를 즐기고 싶은 것이다. 2001년 출판계는 이런 징후에 어떻게 대응을 할 것인가.

▶ 중앙일보 북 섹션 ‘행복한 책읽기’는 출판계 연말 결산을 위해 각계의 주요 인사들의 견해를 자문했다. 다음은 자문에 응해주신 분들의 명단이다.

김갑수(출판평론가) , 김상환(서울대 교수 ·철학) ,김이구(창작과비평사 편집장) , 김재철(동원그룹회장 ·한국무역협회장) , 김종엽(한신대 교수 ·사회학) ,김학원(푸른숲 주간) , 박광성(‘생각의 나무’대표) , 위성계(교보문고 홍보팀장) , 이권우(‘출판저널’ 편집장) , 이승우(한길사 기획실 차장) ,이주헌(아트스페이스서울 관장·미술평론가) ,이진우(계명대 교수 ·철학) , 장은수(황금가지 편집장) , 정운영(중앙일보 논설위원) ,정재서(이화여대 교수 ·중문학) , 최우석(삼성경제연구소 대표이사장) , 하승창(‘함께하는 시민행동’사무처장·중앙일보 독자위원) 홍지웅(‘열린책들’대표) 〈가나다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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