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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 담임 2명이 몰랐다, 자살한 영주 중학생 고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두 담임 교사 모두 숨진 학생의 고통을 몰랐습니다. 좀 더 세심하게 살폈어야 했는데….”

 경북 영주시의 모 중학교 교장 김모(61)씨는 한숨을 쉬었다. 이 학교 2학년 이모(14)군이 같은 반 학생들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해 지난 16일 자신의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숨졌기 때문이다. 김 교장은 “담임 교사가 바뀌는 과정에서 이군이 ‘자살 고위험군’ 학생이란 사실이 전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이군이 이전과 달리 활발해 상황이 많이 나아진 것으로 생각했다”며 “그를 보살피지 못한 것은 학교의 잘못”이라고 말했다.

 숨진 이군의 반은 담임 교사가 두 명인 복수담임 학급이었지만 누구도 그가 ‘자살 고위험군’ 학생이란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군은 지난해 5월 학교의 심리검사에서 자살 고위험군 학생으로 분류됐다. 세심한 관찰이 필요했지만 새 학기 들어 사실상 방치된 것이다. 이에 따라 복수담임제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 제도는 지난해 대구의 중학생 권모(당시 13세)군 자살 이후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도입됐다.

 19일 경북도교육청과 학교 측에 따르면 지난달 초 이군의 학급(35명) 담임으로 강모(35) 교사와 이모(47) 교사가 임명됐다. 강 교사는 학생 생활 및 성적지도, 이 교사는 야외체험학습과 상담을 맡았다. 강 교사는 지난달 19일 이군의 학력·가족관계 등에 대한 상담을 했을 뿐 학교폭력 등의 피해에 대한 상담은 하지 않았다.

 지난해 담임을 맡았다가 다른 학교로 전근한 문모(30) 교사는 “이군은 다른 아이들이 괴롭히면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등 자기대처 능력이 있었다”고 말했다. 학교 측의 부실한 학생관리가 자살 원인으로 지적되는 이유다. 담임 교사가 전근할 경우 보건 교사나 교장·교감이 관리대상 학생을 새 담임에게 알리고 특별 관리해야 하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다.

 전교조 경북지부 이용기 대변인은 “활동할 공간이나 시간을 주지 않은 상태에서 여러 명의 담임을 임명해봐야 도움이 안 된다”며 “오히려 책임이 모호해져 학생 관리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학교 측 과실 여부를 조사 중이다. 또 18일 이 학교 전교생(626명)을 상대로 불량서클 실태 및 폭력 피해 여부 설문조사를 벌여 ‘○○패밀리’ ‘바람’ ‘깍지’ 등 4개 서클이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 ○○패밀리는 이군의 가해 학생인 전모(14)군이 만든 것이다.

영주=홍권삼·위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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