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누른 韓업체…美병원들도 놀란 성공비결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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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피니트헬스케어의 영상저장전송시스템(PACS)을 채택한 미국 뉴저지주의 한 병원에서 의료진이 환자의 영상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인피니트헬스케어]

“우리 병원 환자들의 5년치 영상 자료를 옮기는 데 얼마나 걸립니까?”

 “9개월쯤 걸립니다.”(GE 담당자)

 “5개월이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이원재 인피니트헬스케어 북미법인 이사)

 2009년 초 미국 뉴저지주 패터슨시에 있는 세인트 조셉 병원이 의료영상저장전송시스템(PACS) 교체를 위해 공개입찰을 진행할 때였다. 당시 이 병원은 독일 기업인 지멘스의 PACS를 쓰고 있었는데, 시스템이 노후화돼 의사들의 불만이 쌓여가자 교체를 결정했다. 최종 후보는 한국 소프트웨어업체 인피니트헬스케어와 미국의 GE로 압축됐다. 병원 측은 최종 선택을 앞두고 얼마나 빨리, 기존 지멘스 PACS에 있는 자료를 새 시스템으로 옮길 수 있는지 물은 것이다. GE는 이런 ‘마이그레이션(이동)’ 작업을 직접 하지 않기 때문에 협력업체가 제시한 시간을 그대로 전했다.

 이원재(39) 이사의 계산법은 달랐다. 밤낮으로 매달리면 5개월 만에도 가능할 것 같았다. 그는 계약을 따냈고, 실제로는 3개월 만에 마이그레이션을 마쳤다. 병원 관계자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국 의료용 소프트웨어가 이 분야 강국인 미국에서 인정받고 있다. 의료용 소프트웨어 전문기업인 인피니트헬스케어는 이 병원을 포함해 미국 내 병원 170여 곳에 PACS 솔루션을 깔았다. 미국 진출 9년 만에 이룬 성과다. 첨단 의료장비까지 취급하는 지멘스나 GE, 필름업체로 출발한 후지·아그파 등이 격전을 펼치는 미국 시장에서 무명의 한국 중소기업이 성공한 비결은 뭘까. 최근 뉴저지에서 만난 이 이사는 “브랜드 인지도가 거의 없다는 핸디캡이 역설적으로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북미법인 직원들은 브랜드 열세를 열정으로 메웠다. 한국식 ‘빨리빨리’ 전략도 도움이 됐다. 한국과 뉴저지는 14시간 차이가 난다. 낮밤이 뒤바뀌는 상황을 절묘하게 활용해 24시간 서비스 체제를 만들었다. 고객이 새로운 기능이나 업그레이드를 요청하면 미국지사에 있는 엔지니어 8명이 일을 시작한다. 밤에 퇴근하면서 서울 구로동 인피니트헬스케어 본사에 있는 개발팀에 업무를 넘기면 아침을 맞은 한국 직원들이 일에 매달린다. 태평양을 건너 몇 번만 왔다갔다 하면 고객의 요구사항은 최종 테스트까지 거쳐 완성된다. 이 이사는 “오늘 오후에 맡긴 일이 내일 아침이면 완성돼 있을 때도 있으니 고객들이 굉장히 신기해한다”고 말했다. 지구 반대편에 있다는 단점을 장점으로 바꾼 것이다. 그 결과 영상의학과 전문의들 사이에 서서히 평판이 쌓였다.

 인피니트헬스케어는 1997년 의료기기 전문기업 메디슨의 자회사로 출발했다. 국내 병원 1480여 곳에서 이 회사 PACS를 사용한다. 국내 점유율 1위다. 이에 안주하지 않고 일찍이 세계시장 문을 두드렸다. 2000년 첫 수출 후 지금은 30개국 1050여 개 의료기관에서 인피니트 PACS를 사용한다. 지난해 매출액 495억원 중 139억원을 해외에서 올렸다. 전체 직원 481명 중 40%(190명)가 10개 해외법인(현지채용인 포함)에서 근무하고 있다.

의료영상저장전송시스템(PACS)

X선·CT(컴퓨터단층촬영장치)·MRI(자기공명영상촬영) 등 영상을 디지털로 전환해 판독할 수 있게 해주는 첨단 디지털 의료 소프트웨어와 솔루션. 영상진단 장비로 촬영한 이미지를 실시간으로 저장·조회·진단·분석하는 역할을 한다. 3D(3차원) 입체영상으로 혈관의 세밀한 부분까지 확대해 들여다 볼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이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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